ADVERTISEMENT

[서울라운지] "북한, 핵 보유국 인정 못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러시아는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없다."

글레프 이바셴초프(61.사진)주한 러시아 대사는 20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열린 한국국방연구원(KIDA) 주최 국방포럼에 참석해 이같이 밝혔다. 이바셴초프 대사는 '동북아 문제 해결과 러.한 관계 발전방향'이란 주제의 강연에서 "러시아는 6자회담 과정에서도 북한의 핵 보유국 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북한이 핵 보유국이라는 전제하에서는 어떤 협상도 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입장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사의 이날 발언은 핵실험 성공을 이유로 핵 보유국 지위 인정과 핵 군축회담을 요구하고 있는 북한 입장에 러시아가 동의하지 않음을 확인한 것이다. 앞서 10월 북 핵실험 직후 세르게이 이바노프 러시아 국방장관 겸 부총리는"북한을 핵 국가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바셴초프 대사는 "북 핵실험이 러시아 국경에서 불과 177km 떨어진 곳에서 감행됐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그러나 러시아가 정작 우려하는 것은 북한의 핵실험이 국제사회의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심각한 손상을 끼쳤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의 핵 보유가) 다른 국가에 부정적인 교훈을 줘서는 안 된다"며 유엔의 대북 제재 정당성을 인정했다. 대사는 그러나 "유엔 안보리 결의 1718호는 북한을 벌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불가피하게 취해진 예방조치"라며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를 무리하게 확대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한편 이바셴초프 대사는 이날 핵개발과 관련, 미국의 대북 강경책을 나무라는 듯한 발언도 했다. 그는 "국제관계에서 강경 해결책이 득세함에 따라 자국 안전보장을 우려하는 국가의 수가 늘고 있다"며 "최후통첩과 제재의 언어가 국제법의 지배로 전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러 경제협력과 관련, 그는 "올해 양국 교역량이 2000년의 5배인 10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라고 만족감을 표시하면서도 "러시아를 원자재 공급국으로만 보는 것은 문제"라며 경제.과학기술.문화 등 다양한 분야로의 협력 확대를 촉구했다. 그는 특히 한국 민간 헬기의 3분의 1이 러시아제라는 점을 상기시키며 항공.우주 등 첨단기술 분야의 협력 강화에 기대를 표시했다.

지난해 7월 서울에 부임한 이바셴초프 대사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같은 러시아 제2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으로 1975년 소련 외무부에 들어간 뒤 뭄바이 총영사(91~95년), 미얀마 대사를 역임한 정통 외교관료다. 그는 매일 러시아인 부인이 직접 만들어 식탁에 올리는 배추김치와 오이소박이를 즐기는 애한파(愛韓派)이기도 하다.

글=유철종, 사진=오종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