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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괴담'으로 흉흉한 세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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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기대와 설렘, 후회와 분노가 교차하게 마련인 세밑 분위기에 대선까지 앞두고 있어서인지 목청을 높이는 사람이 유난히 눈에 띈다. 기대와 희망보다 흉흉한 얘기들이 많다는 것도 예년과는 다른 광경이다. 소설보다 더 극적인, 믿거나 말거나 식의 엽기적 괴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대선 괴담'의 한복판엔 노무현 대통령이 있다. "범여권의 대선 후보를 결정해 놓고 노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물러날지 모른다"는 루머가 떠돌아다닌다. 대통령이 하야하면 한나라당 내 유력 주자들이 각각 출마하게 돼 패배로 이어지게 된다는 얘기다. 노 대통령이 중대선거구제 도입 문제를 놓고 한나라당 유력 주자들과 빅딜에 나설 것이란 얘기는 특히 노 대통령의 퇴임 후 정치 재개설과 맞물려 더 증폭되고 있다. 최근 노 대통령이 "나중에 국회의장에 도전해 봐야겠다"거나 "부산시장에나 출마해볼까"라고 말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그가 대선과 연계한 승부수를 던질 것이란 얘기가 파다하다.

전격적인 남북 정상회담 개최설도 입소문을 타고 있다. 최근 만난 여권 성향의 한 전직 의원도 "선거전이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간다고 판단하면 북한이 먼저 남북 정상회담 카드로 선수를 칠 수도 있다"는 말을 했다. 그는 "투표 2, 3일 전에 김정일이 해빙무드를 조성, 곧 남북이 통일이라도 될 듯이 화해 제스처를 취한다면 젊은층이나 진보 성향 유권자들의 몰표가 나올 수도 있지 않으냐"고 했다. '제2의 김대업'이 나올 것이란 설도 있다. 주로 한나라당이나 지지자 쪽에서 나오는 얘기다. 모임에서 만난 50대 남성(사업)은 "여당이 불리한 판세를 뒤집기 위해 김대업 같은 배우를 등장시켜 야당 후보의 의혹을 부풀리고 흠집 내기를 할 것이다. 선거가 끝난 뒤 사실무근임이 밝혀진들 무슨 소용이냐"고 했다.

더 섬뜩한 얘기도 있다. 유력 후보에 대한 암살 등 테러설이다. "북한의 사주를 받은 집단이 대선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 선거 막바지에 유력 후보에 대한 암살 기도 등 테러를 가할 수 있다"는 얘기가 퍼지고 있다. 후보 유고사태다. 우리 정치사엔 테러로 얼룩진 경험이 적잖다. 지난 6월 지방선거 유세 때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괴한의 습격을 받는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테러는 아니지만 1956년 민주당의 대선 후보이던 해공 신익희 선생은 호남선 열차 안에서 뇌일혈로 급서했고, 그 결과 이승만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했다. 유석 조병옥 박사도 60년 대선을 앞두고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다.

불안한 사회일수록 괴담이 춤을 춘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클수록 그 음습한 심리를 파고드는 게 유언비어다. 마치 몸이 병약해져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병균이 침투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문제는 체질이 허약해질 때 진짜로 괴담이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긴장과 감시의 고삐를 늦추고 해이해질 때, 그래서 스스로 주인노릇을 못하고 휘청거릴 때 무협지를 방불케 하는 엽기적인 괴담은 현실이 될 수 있다. 테러도 마찬가지다. 군.경찰의 확고한 태세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국민의 성숙한 주인의식이 우선돼야 한다. 주인들이 눈을 똑바로 뜨고 정신을 바싹 차려 오판할 기회를 주지 않는 게 테러를 막는 최상의 길이다. 상대로 하여금 '테러로 얻을 성과가 없다'고 판단하게 한다면 섣불리 무모한 짓을 하지 않을 것 아닌가. 네거티브 선거운동도 마찬가지다. '득(得)보다 실(失)이 많다'고 생각해야 어리석은 네거티브전을 걷어치울 것이다.

이정민 정치부문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