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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반대로 공개수사 시기 놓쳐/또 터진 국교생 유괴살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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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장소옮겨 통화 경찰추적 따돌려/사체 주변엔 별다른 단서 안남겨/치밀한 범행 둘이상 공모 가능성
이형호군 유괴살해사건은 유괴범이 46차례나 협박전화를 걸어 몸값을 뜯어내려 했는데도 범인검거는 커녕 윤곽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그동안 협박전화를 도청해 수사해온 서울 강남경찰서 형사들은 『다른 유괴범들 같이 당황스러워함을 전혀 보이지 않고 침착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고 유기된 사체주변에도 별다른 흔적을 남기지 않은데다 협박전화도 장소를 옮겨다니며 4분 이내에 끝내 경찰의 추적을 완벽하게 따돌릴만큼 대담하면서도 치밀한 범인이다』고 말했다.
유괴직후 경찰은 범인이 협박전화를 계속하면서도 정작 약속장소에는 한번도 나타나지 않고 몸값이 입금된 은행계좌에도 전혀 손을 대지 않아 이군 가족을 괴롭히려는 원한관계에서 비롯된 범행가능성인가 보고 수사의 초점을 맞춰왔다.
그러나 경찰은 ▲협박전화가 설날연휴 직전인 지난달 13일 10차례나 집중된 점 ▲이군 사체의 부패정도로 미뤄 한달전께 살해됐을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보고 돈이 급한 범인이 설날직전 몸값을 찾으려하다 실패하자 살해를 결행한 단순유괴사건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를 펴고 있다.
협박전화와 범인이 남긴 메모지를 토대로 수사를 벌여온 경찰은 ▲범인이 협박전화를 서울시내 전역의 공중전화에서 걸었고 ▲카폰이 달린 고급승용차를 타고 나올 것을 요구한데다 ▲돈을 갖고 나오도록 지시한 약속장소를 평소 사람이 많이 붐비는 시내 중심부와 강남·김포공항 등으로 정한 점 ▲사체유기장소가 차량이외에는 접근이 불가능한 곳이라는 점 등을 들어 차량을 갖고 서울시 지리를 잘아는 1∼2명의 소행으로 추정했다.
범인은 또 약속장소에는 나타나지 않았으나 『차키를 꽂은채 놓아두라』『왜 트렁크를 열어놓지 않았느냐』고 일일이 지시해 현장에 상당히 접근해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녹음된 협박전화 테이프와 범인이 공중전화 부스 등에 남겨놓은 자필협범 메모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내 감식을 의뢰했으나 범인이 20대 후반의 고졸이상 고학력 소지자라는 사실만 밝혀냈을 뿐이다.
지금까지 법인의 윤곽이 가장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은 은행계좌 개설때 상업은행 문래동지점 부근 도장포에서 가명도장을 새기기 위해 30분간 머무르고 간 때로 경찰은 이를 토대로 몽타주작성을 했다.
경찰이 그동안 파악한 것은 범인이 1m70㎝ 가량의 서울·경기 말씨를 쓰는 20대 후반이라는 점이다.
경찰은 이군 주위인물 26명을 상대로 집중조사를 해왔고 그동안 4백여명을 수사대상에 올려놨으나 윤곽이 나타나지 않고 수사가 원점을 맴돌자 『공개수사가 불가피하다』고 가족들을 설득했지만 가족들의 반대로 적절한 공개수사의 시점을 놓쳐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또 이군의 할아버지가 부동산 알부자이고 아버지가 한번 이혼한 경험이 있어 경찰은 주변인물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대전에 살고 있던 생모(34)는 사건발생 직후 서울 친척집에 머무르며 경찰수사를 적극 도와왔다.
경찰은 이군 사체발견 이후 공개수사로 범인육성 녹음테이프가 방송에 공개되고 몽타주가 배포됨에 따라 시민들의 제보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이철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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