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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소련 후신 CIS 와해 조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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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21일로 소련이 무너지고 독립국가연합(CIS)이 출범한 지 15주년을 맞는다. CIS는 소련에 속했던 공화국들 중 에스토니아.리투아니아.라트비아 등 발트 3국을 제외한 12개 나라가 결성한 국가연합체다. 소련의 상속자인 러시아가 역내 영향력 유지를 위해 어떻게든 활성화해 보려는 조직이기도 하다. 그러나 탄생 15주년을 맞은 CIS의 운명은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다. 옛 '형제국'들이 각자 살길을 찾아 분열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한 신문은 최근 "CIS는 들고 다니기는 무겁고, 버리기는 아까운 낡은 트렁크"라고 꼬집었다.

◆ 실패한 정상회담=지난달 28일 벨로루시 수도 민스크에서 열린 CIS 정상회의는 '고물'로 전락한 이 조직의 처지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라트비아 리가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들이 회동하는 날에 맞춰 의욕적으로 개최된 이날 CIS 회의는 끝내 '썰렁한 잔치'로 끝나고 말았다.

CIS 맹주인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현재 CIS 의장국을 맡고 있는 카자흐스탄의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CIS를 변화한 국제정세에 맞춰 유럽연합(EU)과 유사한 조직으로 변화시키자"고 제안했으나 여러 회원국이 '소련으로의 회귀'라며 반대했다. CIS 내에 자유무역지대를 창설하기 위한 협상도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회원국 간 국경 확정 협상도 상호 입장차만 확인한 채 끝났다. 주요 안건이 하나도 제대로 처리되지 못한 것이다. 비판이 쏟아진 건 당연하다. 러시아의 친정부 성향 신문인 로시이스카야 가제타마저 "흘러간 과거에 대한 향수에 기초해 만들어진 CIS는 소멸할 것"이라는 진단을 내놓았을 정도다.

◆ 갈라선 '형제국'들=CIS가 무너지고 있는 것은 회원국들이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벨로루시와 우즈베키스탄 등은 러시아와의 협력을 바탕으로 한 생존전략을 추구하지만, 2003년과 2004년 민주.시민 혁명을 거친 그루지야와 우크라이나는 아제르바이잔.몰도바와 함께 반러 친서방 성향의 구암(GUAM)이란 조직까지 만들어 CIS의 힘을 빼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는 나토와 EU 가입을 서두르며 CIS에서 탈퇴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다.

이에 러시아가 올해 초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가격을 대폭 인상하는 등 집안 단속에 나서고 있지만 이미 새기 시작한 자루를 꿰매기는 힘든 상황이다.

유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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