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법무 "분식 고백 기업 형사처벌 면제" 발표 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2면

우리 기업들의 오랜 숙제였던 과거 분식회계 청산에 돌파구가 마련됐다. 18일 김성호 법무부 장관은 '분식 고백 기업 형사 처벌 면제' 방침을 밝혔다. 이에 대해 기업들뿐 아니라 금융감독 당국도 "큰 짐을 덜었다"며 반기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홍렬 부원장은 19일 "분식회계 고백을 망설이고 있는 기업들이 좋은 방향으로 결단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가 마지막 기회=기업들이 과거 분식회계를 인정하고 수정하는 '고해성사'가 가속될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 이재식 회계감독1국장은 "최근 금감원에 분식회계 자진 신고 문의가 급증하고 있다"며 "특히 오너의 결단이 필요한 큰 규모의 회사는 이번 법무부 방침으로 큰 걸림돌 하나가 없어진 셈"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2004년 시행된 회계법인 의무 교체 규정에 따라 기업들이 6년 이상 같은 회계법인을 쓸 수 없도록 한 것도 분식회계 자진 신고를 가속할 전망이다. 전 부원장은 "새로 바뀐 회계법인이 전임자의 분식을 안고 갈 필요가 없어 기업들이 이를 계기로 자진 고백할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

이 규정에 따라는 올해는 84개, 내년엔 145개 회사가 회계법인을 교체해야 한다.

지금까지 금융감독위원회와 금감원은 내년 시행되는 증권집단소송제에 대비,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한시적으로 2004 사업연도 이전의 분식을 자진 고백하면 면책 기회를 줘왔다. 그러나 자진 신고 기업은 많지 않았다. 금융당국의 제재는 피할 수 있어도 형사 처벌까지 면제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1600여 개의 상장사 중 분식을 스스로 수정해 감경 조치를 받은 회사는 2년간 129개에 불과했다. 실적 보고서 제출 때마다 조금씩 다른 곳에 끼워넣는 방식으로 표 안 나게 분식을 수정한 경우까지 합해도 분식회계 수정 기업은 많아야 200개를 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전히 불안한 기업들=그러나 이번 조치가 기업들의 대대적인 고백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분식회계에 따른 형사 처벌은 면제되지만 횡령이나 배임 등의 책임은 면할 수 없고 개별 민사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 재무 담당 간부는 "정부가 대승적인 방향을 제시한 것은 반가운 일"이라면서도 "(분식을 고백할 경우) 주주 반발 등 사후 감당해야 할 문제가 너무 많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대기업 재무담당 간부는 "분식을 고백하는 것은 분식회계를 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문제"라며 "기업 오너가 세밀한 검토를 거쳐 결정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안혜리·최준호 기자

◆증권집단소송제=기업이 주가 조작이나 분식회계, 허위 공시 등으로 주주에게 손해를 끼쳤을 경우 주주 대표가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해 이기면 다른 주주들에게도 손해배상을 해주는 제도다. 2005년 자산 규모 2조원 이상인 기업에 우선 적용키로 했으나 2년간 유예돼 2007년에 시행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