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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의 숨겨진 삶 역사 미스터리 영화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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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단원 김홍도(1745~?)가 일본의 천재화가 도슈사이 샤라쿠(東洲齋寫樂)와 동일 인물일 것이라는 내용을 다룬 영화가 만들어진다. 영화제작사 런치박스 픽처스는 1백여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기운생동(氣韻生動)'을 내년 말께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감독은 '예스터데이'의 정윤수씨, 각본은 '가문의 영광'의 김영찬씨가 맡아 현재 마지막 손질 중이다. 런치박스 픽처스의 송건호 이사는 "이달 중 주연 배우 캐스팅이 결정되면 곧 촬영에 들어갈 것"이라면서 "영화가 완성되면 일본의 도에이(東映)영화사와 손잡고 한.일 동시 개봉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샤라쿠는 일본 에도시대에 활약했던 풍속화가로, 1794년 5월 갑자기 나타나 단 10개월의 활동 기간 중 1백40여점의 그림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 인물이다. 국내에서 샤라쿠가 조선의 김홍도일 것이라고 처음 주장한 사람은 만엽집 재해석으로 유명한 이영희(72)씨였다.

그에 의하면 단원은 정조가 일본에 보낸 '스파이'라는 것. 1764년 이후 30년간 통신사의 왕래가 없어 일본 상황이 궁금했던 정조는 김홍도를 일본에 보내 화약을 비롯한 일본의 병기 상태를 그려오라 밀명을 내렸다는 게 그의 해석이다.

이씨는 특히 일본에 잠입한 단원은 현지 활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샤라쿠란 이름으로 풍속화를 그렸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주장은 1996년 일본의 아사히TV를 통해 방송돼 관심을 끌었고 1998년 자신의 연구 결과를 '또 한사람의 샤라쿠'(사진)라는 일본어 책으로 묶어 다시 주목을 받았다.

영화 '기운생동'은 이런 역사적 가정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제작진은 두 화가의 화법과 화풍을 비교하고 주변 인물들이 남긴 기록에 근거해 두 화가가 동일인이라는 가정을 입증하겠다는 입장이다.

고증을 위해 한국의 풍속화 분야 교수진과 일본 샤라쿠 연구회의 현역 미대 교수들이 참여할 예정이다. 영화사 측은 수도권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으로 세트를 짓는 한편 일본 현지 촬영은 메이저 영화사인 도에이의 교토 촬영장을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영화가 갖는 대중성을 감안, 역사적 고증과 메시지 전달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고 있다. 한 역사학자는 "일본에서만 샤라쿠로 추정되는 사람이 무려 30여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김홍도=샤라쿠'를 영상에 담을 경우 혼란이 일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90년대 말 일본에서는 샤라쿠가 에도시대 화가 호쿠사이(北齊)였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이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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