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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지성] 3천개 언어, 금세기에 사라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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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보전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멸종 위기에 처한 동.식물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하지만 인종이나 민족, 그리고 그들의 언어가 사멸 위기에 놓였다는 사실엔 무감각한 편이다. 신간 '사라져 가는 목소리들'은 세계의 소수 언어와 문화가 직면한 위기를 경고하고 있다. 팬더나 얼룩올빼미 등이 처한 곤경만큼이나 언어의 다양성이 훼멸되는 정도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언어학자들은 오늘날 세계적으로 5천~6천7백개의 언어가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그런데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그 가운데 절반 혹은 그 이상이 21세기에 사멸할 것이라고 이 책은 진단한다. 영국의 생태인류학자 대니얼 네틀과 언어학자 수전 로메인이 함께 썼다.

책은 특정 언어를 마지막까지 사용하다 그 언어와 함께 사라져버린 사람들의 최후를 그려내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1974년 영국령 맨 섬에서는 네드 매드럴의 죽음과 함께 맹크스어가 사라졌다. 1996년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원주민 붉은천둥구름의 죽음과 함께 카토바족 수어가 사라졌다. 이들은 일례일 뿐이다.

2백년 전 탐험가 쿡 선장이 호주에 발을 디딘 이후 지금까지 호주 원주민들이 사용하던 2백50개의 토착어가 대부분 사라졌다.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사용되던 1백여종의 토착어는 모두 사라졌다. 지난 5백년 동안 세계의 언어 중 거의 절반이 사라졌다.

특정 언어가 사라지는 주된 이유는 주민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다. 어려운 환경 아래에서 언어의 포기 이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다른 말을 사용하는 것이 더 안정된 생활과 신분 상승을 보장한다는 판단 아래 자신의 말을 포기하기도 한다.

경쟁에 탈락해 사라지는 언어를 보호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책은 '생물언어적 다양성'이란 개념을 제시한다. 이는 언어.문화적 다양성과 생태계의 다양성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지칭하는 말이다.

세계 언어 분포 지도를 보면, 적도를 중심으로 한 열대 지역 20개 국가들이 세계 언어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동시에 이 지역은 지구촌 전체 생물종의 대부분이 서식하는 곳이기도 하다.

특정 언어에 담긴 효용성을 고려할 수도 있다. 이를테면 태평양 팔라우섬의 어부들은 과학책에 기재돼 있는 것의 몇 배나 되는 어종의 음력 산란 주기를 알고 있다고 한다. 아울러 북극에 거주하는 이누이트족은 얼음과 눈의 강도에 따라 각기 다른 이름을 붙였다. 다양하고 독특한 문화가 언어의 소멸과 함께 사라짐을 책은 우려하고 있다.

책이 제시하는 대안은 이렇다. 토착민들이 지역 생태계와 언어를 보존하면서 동시에 경제적 혜택도 누리게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지역 생태계의 자원을 통제할 권리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개발은 외부인에 의한, 외부인을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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