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오십보 백보」싸움(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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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의혹의 당사자인 민자당과 평민당은 수서사건이 몰고 올지도 모를 파장의 중대성을 올바로 인식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정쟁의 테두리를 초월한 위기극복 방안을 진지하게 모색해 실천할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요즘의 모습을 보면 정치권은 이에 대해 긍정적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뇌물성 외유사건에 이어 터진 수서사건은 공교롭게도 여야 정치권이 오십보 백보 사이로 연루되어 있어 체제 자체의 위기상황까지 몰고올지도 모를 중대한 국면이 조성되고 있다.
그럼에도 정치권의 대응책은 근본적인 쇄신책을 모색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은채 파당적인 이전투구 양상을 보여 정치불신을 심화시키고 있다.
여야가 이 사태를 한 정권 또는 한 정파의 운명에만 관련시켜 인식하지 않았다면 결코 국면 모면에만 급급한 그런 대응자세를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그렇지 않아도 정파간의 무한투쟁양상을 보여온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도를 넘은 상태였다. 여기에 수뢰마저 여야의 구별이 없게 된 상황은 국민들로 하여금 체제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갖지 않을 수 없게 할지도 모른다.
여야가 이런 위기상황을 꿰뚫어 보고 공멸의 길로 들어서길 원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이를 계기로 국민의 신뢰를 되찾는 성실성을 보여줘야 할 것이 아닌가.
여야는 우선 이 사건을 정쟁의 도구로 이용하려는 구태의연한 작태를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야 할 것이라고 본다. 양측이 지금처럼 상대방에 자기측이 당하는 타격만큼은 입혀야겠다는 원시적 작태를 견지한다면 공멸의 진짜 위기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정부와 여야 정치권이 이 시점에서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사안은 국면전환을 어떻게 도모하느냐는 점이다. 이는 사건의 엄정한 규명과는 별도의 차원에서 고려돼야 할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 첫째가 이번 두 사건이 남긴 문제점을 냉철하게 분석,그것을 혁파하는 쇄신책을 제시,실천하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다. 이미 누누이 지적했듯이 부패와 부정,부조리의 구조적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제도개혁에 여야가 온 힘을 모아야 한다.
우리 정치는 여건 야건 할 것 없이 돈이 너무 많이 드는 제도상의 구조적 결함을 갖고 있다. 중앙당 집중식의 운영체제,수장중심의 정치조직,그런 현상에 따른 선거제도와 유권자 관리행태,정치자금의 독식화 경향 등 어느 것 하나 전근대적이 아닌 것이 없다.
여야가 제도권 위기의 차원에서 이번 사태를 전기로 삼기 위해서는 머리를 맞대 이런 구조적 폐단을 혁신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둘째,정부와 여당이 인사개편만으로 탈출구를 삼으려 해서는 결코 안되며 법과 규정,그리고 제도가 혁신의 활력으로 작용하는 체제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제도상의 뒷받침도 필수적이지만 결국은 최고지도자의 단호한 의지가 절대적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여야는 정권다툼을 하더라도 사회를 바탕에서부터 뒤흔드는 부패문제에 있어서만은 공멸의 위기의식으로 임해야 한다.
독식과 투쟁위주의 정치행태가 오늘날 여야 똑같이 부패구조로 떨어지게 만든 한 주인임을 감안한다면 지도자들의 의식과 발상의 전환은 절실해진다.
정치권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모든 것을 정치로 재단하는 과정치현상을 혁파하기 위해 일대 쇄신책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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