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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물고기를 찾아서』 쓴 최기철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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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삼동을 내내 방안에 들어앉아 있었으니 졸갑증이 날만한 때도 됐지요. 봄소식 들릴 날이 낼 모렌데 또 아랫도리 걷고 물을 찾아 나서야지요.』
이렇게 말하는 최기철옹(서울대 명예교수)의 올해 연치는 망구 어름의 여든둘이다. 종명을 염두에 두고 될수록 움직임을 줄이는게 통상 수에 든 노인네들의 순리로운 마음가짐이라면 최옹은 그와는 어긋지게 노를 더할수록 기거가 장해진다는데서 참 별난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이번에 한길사에서 펴낸 『민물고기를 찾아서』도 그의 이런 노익장이 키워낸 열매의 하나라고 할 것이다. 「한국 민물고기에 관한 살아있는 현장보고서」라고나 해야 할 이 책에는 그가 30년을 넘게 전국의 담수어 생태를 찾아 헤매면서 보고 듣고 겪었던 학문의 뒷이야기들이 매우 소상하게 기록돼 있다.
『우리나라의 행정면이 모두 1천5백여 곳 된다고 하더군요. 거기에 딸린 리·동이며 자연부락을 그동안 이 두발로 다 더듬었어요. 한 자소를 열대여섯 차례씩 오르내려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지요.』
그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 남한에 서식하고 있는 민물고기는 공인된 것이 1백45종. 거기에다 최근 확인이 끝나 목록에 올릴 단계에 있는 5∼6종을 보태면 총 1백50종 정도가 될 것이라고 한다.
50년대 후반 이후로는 북한쪽 소식을 접하지 못해 잘 알 수는 없으나 거기에서만 발견되는 것들이 약 20종 정도 된다고 볼 때 남북한 합쳐 한반도 전체에 살고 있는 민물고기는 1백70종 내외로 정리될 수 있으리라는게 그의 추산이다.
이렇게 많은 민물고기들의 습성이라든가 서식의 방식, 분포 따위를 전국을 돌아다니며 일일이 확인하는 일이 담수생태학자로서의 그의 몫.
『어떤 민물고기가 어디에 얼마나 어떻게 분포돼 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를 밝히는 작업이다. 『몸으로 직접 맞부닥치지 않고는 해결될 수 없는 것』이 이 학문의 성격이어서 그가 끊임없이 떠돌며 겪었던 이른바 직체험이 안겨주는 생생한 자연과 인간의 이야기는 재미있기 이를 데 없다.
이 책에서 특히 도드라져 보이는 부분은 그가 한 물고기를 두고 지역마다 다르게 붙여 부르고 있는 방언의 이름을 꼼꼼하게 모두어 정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고기의 이름은 똑같은 것인데도 지역마다 가뭇없이 다르기 예사인데 가령 우리가 익히 잘 아는 피라미만 해도 갯피리·갱피리·파라지·날피리·은피리·지우리·참피리·피라지·피래미·피랭이·피리 등 각기 다른 이름이 5백가지가 넘는다. 피라미의 수컷을 이르는 불거지도 또 지역마다 부르는 이름이 달라 가라·각시피리·간다리·갯갈·돌가래·먹지·불가로·술메기·적도지 등 별명만 30여가지나 된다.
물고기의 방언을 모아 정확하게 정리하기 위해서는 문헌섭렵과 현장조사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최옹이 지금까지 더듬어낸 우리 옛 문헌은 크게 허준의 『동의보감』, 박윤덕의 『향약집성방』, 서유거의 『임원경제십육지』, 이만영의 『재물보』, 이행의 『신증동국여지승람』, 정인지의 『세종실록지리지』를 비롯해 1백10종을 넘고 있다.
옛 문헌을 뒤져 하다못해 시문 속에 언급된 물고기까지 빠짐없이 추려낸 뒤 거기 묘사되고 있는 생김새의 특징이나 습성·생태 등을 실마리로 전국 각지를 돌며 그 물고기의 이름을 수집하는 것이다. 그렇게해서 임진강 상류에서 산다는 전설의 고기 미수개미가 한강 연안에서는 공지, 청평지방에서는 두우쟁이, 금강유역 일대에서는 사침어·삼치마로 각기 달리 불리면서 그게 실은 같은 종류의 물고기라는 사실이 확인되는 것이다.
최옹의 물고기 방언채집을 보면 마치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장에서 사금 몇 알갱이를 찾아내는 일과도 비슷하다. 60년대 초 우연히 「동서」라는 말만 듣고 그것이 서유거가 『임원경제십육지』 「전어지」에 소개한 눈불개임을 밝혀낸 사연만 보아도 그렇다. 공주에 사는 사람에게 이리저리 물어본다. 시원치 않다. 공주사대에 가서 표본을 조사해 본다. 없다. 교수에게 묻는다. 허사다. 어부를 찾아간다.
동서의 실물이 없어 답이 신통치 않다. 이번에는 시장으로 간다. 건강한 아저씨가 『그것도 모릅니까. 아카메를…』 한다. 얼마 후 공주사대 이원구 교수에게서 동서의 표본을 받아보고 그것이 틀림없는 눈불개임을 알게 된다. 『그게 75년 5월의 일이니까 동서가 눈불개의 방언이라는 걸 밝혀내기까지 꼬박 11년이 걸린 셈입니다』고 그는 웃는다.
최옹이 지금까지 30여년 동안 전국을 돌며 채집한 물고기의 표본은 약 50만점.
그것들을 지난해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중앙과학박물관에 모두 기증했다. 정리카드 5천장도 컴퓨터 입력이 끝나는 대로 곧 박물관에 넘겨 줄 작정이다.
그는 남획이나 급격히 진행되는 수질오염 등으로 물고기의 서식환경이 갈수록 악화돼 가고 있다며 걱정이 태산이다.
『서호납줄갱이가 절멸해 버린 뒤를 이어 임진강·한강·금강에서 자주 눈에 띄던 종어(동자개·빠가사리)도 82년 이후로는 한마리도 발견되지 않습니다. 아마도 멸종된 것으로 보이는데 정말 가슴아픈 일이지요.』
이대로 가다가는 물고기들이 깃들여 사는 전국의 모든 강과 내·개울에 악취로 가득 찬 새까만 4급수만 흐르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그는 말한다. 모든 생명체의 생존 자체를 거부하는 이른바 「물의 사막화」 현상이다.
최옹은 이 책 말고도 국민학교 고학년과 중·고생들을 대상으로 한 『민물고기의 첫걸음』을 오는 5월 말게 펴낼 셈으로 한창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리고 이때까지 모은 문헌·방언자료를 토대로 글이 있기 전부터 불리던 우리나라 민물고기들의 고명칭을 유추해내는 3천장 분량의 전문학술서도 함께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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