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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교복의 변신은 무·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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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올해 3월 SK네트웍스 스마트가 중.고생을 상대로 '지금 입는 교복을 택한 이유'를 물은 결과 중.고생의 18%, 그 중 여학생의 33%가 이렇게 답했다. "학교마다 교복이 정해져 있는데 디자인 때문에 선택했다니?"라며 의아해한다면 요즘 교복을 너무 모르시는 말씀. 하기사 호크 풀고 흰색 목폴라를 드러내거나 실핀으로 치맛단 줄이던 옛날 경험만 남아 있는 요즘 부모 세대로선 어려운 얘기일 수도 있다.

같은 교복이라도 브랜드에 따라 미세한 차이를 보이고 또 이를 활용해 자신만의 개성을 표출하려는 학생들 덕에 교복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같은 복장 속에서 자신만의 개성을 표출하기 위한 21세기 중.고생들의 패션 감각을 재단해 보니-.

# 교복에서 차별화를 찾는다

교복이라고 다 똑같은 게 아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대기업 계열의 학생복 생산업체가 등장하면서 학교에서 지정한 디자인과 색깔만 같을 뿐 교복 소재와 형태는 다양해졌다. 남.여 학생 모두 입는 재킷만 해도 소매나 밑단 길이, 재단이 업체별로 조금씩 다르다. 기능성 소재를 쓴 것도 있다. 어떻게 입어야 친구들과 달라 보이는지, 어떤 브랜드를 입어야 옷 태가 나는지 관심사가 아닐 수 없게 된 셈이다. 내년에 고등학생이 된다는 서울의 여중생 A양(15)은 "교복이 별로인 학교에는 솔직히 가고 싶지 않다"며 "어떤 재킷을 입어야 덜 뚱뚱하고 더 예뻐 보이는지 브랜드마다 비교해 보고 산다"고 말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자신의 스타일을 뽐내는 모임에는 교복을 자랑하는 학생들도 있다. 길이가 짧아진 기성 교복 재킷부터 치마의 주름이나 라인을 바꾸는 '나만의 디자인' 교복까지 각양각색의 '스타일법'이 소개돼 있다.

이러다 보니 교복을 바꾸는 학교도 생겨났다. 서울의 한 여고 관계자는 "역사가 오랜 학교다 보니 예전에 선택했던 교복이 아직도 그대로다"며 "예비 고교생들이 학교를 지원할 때 우리 교복이 '촌스럽다'며 기피한다는 얘기가 많아 곧 세련된 디자인의 새 교복으로 바꿀 방침"이라고 밝혔다.

# 학생들이 원하는 교복

현재 서울의 중.고교 662개 중 98%인 646개교가 교복을 채택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교복 시장은 한해 4000억원 규모로 커졌다. 학생들의 패션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면서 교복 업체들로서는 학생들 의견이야말로 치열해진 경쟁에서 가장 필요한 정보가 됐다.

스마트는 올 1월 전국 1000명의 학생으로 '품질 평가단'을 구성했다. 이들은 현재 입고 있는 교복의 장단점 등을 회사에 알려주고 교복 할인 등 혜택을 받는다. 스마트의 평가단 의견은 곧바로 실제 교복 제작에 적용됐다. "가을.겨울용 재킷이 너무 얇다"는 학생들 지적에 따라 두껍지 않은 천을 두 겹으로 보온성을 높여 코트를 안 입어도 따뜻하고 가벼운 재킷을 개발, 올 겨울용으로 내놓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 "겨울 코트는 학교에서 벗어 둘 데도 없고 움직이는 데 불편하고 뚱뚱해 보여 잘 안 입는다"는 것이 평가단에 참여한 박상인(18)양의 설명이고 보면 학생들이 '옷 맵시'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재킷의 패드를 줄이거나 없애 슬림한 디자인을 강조하거나 바지의 밑위를 짧게 끊는 등 유행에 맞춘 디자인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패션을 선도하는 디자이너의 참여도 늘고 있다. 지난해 3월 개교한 경기도 용인의 한국외대부속 외고의 경우 디자이너 앙드레 김이 참여했으며 올해 아이비클럽은 강기옥 디자이너를 자문으로 영입해 일명 '헵번 스타일' 교복을 내놨다. 60년대 유명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의 복고 이미지를 강조한 이 교복은 여학생 재킷의 칼라 부분을 기존의 V자형이 아닌 U자형으로 만들어 상대적으로 얼굴과 어깨 라인은 작아 보이고 가슴은 돋보이게 했다는 것이 제작사의 설명.

엘리트 학생복 역시 디자이너 노승은과 정욱준의 감수를 맡고 있다. 정욱준이 디자인한 남학생복은 재킷 안감을 컬러 파이핑(연결 부위 솔기를 다른 천으로 둘러 박는 것) 해 포인트를 주기도 했다.

외국의 유명 패션업체도 참여했다. 지난해 11월 일본인 유명 디자이너 미치코 고시노의 '미치코 런던'이 학생복 시장에 진출한 것.

가속화되는 학생복의 '패션화 바람'에 대해 아이비클럽 한지영 팀장은 "여학생복뿐만 아니라 남학생복까지 패션 요소가 더욱 중요해졌다"며 "학생들의 감성이 갈수록 민감해지고 있어서 교복에서도 디자인과 기능 경쟁이 기성복 못지 않게 치열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글=강승민 기자<quoique@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xdragon@joongang.co.kr>

후드형 교복으로 디자인 상 탄
채진선·김계은 양

내가 만든 교복을 입고 다니고 싶다. 옷 만드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라면 학교 다닐 때 이런 생각 한번쯤은 해봤을 터. 이런 '소망'을 '현실'로 만든 학생들이 있다. 서울 성동여실고 디자인과에 다니는 김계은(18.사진(右))양과 영신여실고 보건간호과에 재학 중인 채진선(18)양이 그들이다.

초등학교 동창인 두 소녀는 지난 11월 학생복 업체인 아이비클럽이 개최한 '제2회 교복 디자인 제작 캠프'에서 대상을 받았다. 교복 재킷에 모자가 달린 일명 '후드형 교복'이다. 아이비클럽은 곧바로 이 디자인을 적용한 올 겨울용 교복을 출시했다.

하필 '후드형 교복'을 만든 이유는 뭘까. 채양은 "후드티를 재킷 안에 받쳐 입는 친구들이 많아 디자인 아이디어를 냈다"며 "그렇게 하면 귀여워 보인다고 많이들 입는다"고 했다. 그는 "원래 정해진 셔츠 외에 다른 것을 입으면 안 되는데 선생님들이 가끔 허용해 준다"며 "기회를 봐서 입을 수도 있고 그러면서 약간 멋도 낼 수 있는 아이템이 후드티"라고 제작 배경을 설명했다.

동료인 김양은 무대의상 디자이너가 꿈인 '미래의 디자이너'. 내년 2월 졸업 예정인 그는 패션전문학교인 에스모드 입학을 준비 중이다. 김양은 "교복을 입다보면 답답하다"며 "규칙이 너무 고지식해 개성을 살릴 수 없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채양은 인터뷰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겨울이면 외투도 입어야 하는데 거기에 정해진 교복 조끼도 입으라잖아요. 그렇게 입으면 뚱뚱해 보이는데. 여학생들이 뚱뚱해 보이는 거 얼마나 싫어하는 줄 아시죠. 학교가 학생을 이해하면 교복이 좀 달라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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