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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방송·통신 융합, 독립성 살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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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지난주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가 그간 연구해 온 기구 개편안을 입법예고한 후 갈등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통합기구 구상의 한 축을 담당했던 방송위원회조차 방송의 독립성과 공공성이 담보되지 않은 방안이라며 거부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다. 반대의 전선은 학계와 야당, 그리고 시민단체까지 넓다.

이번 통합위원회 설치 방안이 더 큰 혼선을 야기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현재 분리된 규제체계의 문제점에 대한 인식 따로, 개편 방안의 비전 따로, 통합기구 성격 따로에서 오는 일관성 내지 완결성의 부족과 이에 따른 대국민 설득력이 미흡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추진위는 통합기구 필요성의 근거로 현재 제도의 문제점들을 내세운다. 하지만 여기엔 국민 복지 향상 또는 소비자 주권의 확립을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는 점이 빠져 있다. 행정 편의주의와 사업 환경의 개선에만 초점을 두고 있어 국민적 합의를 이끄는 데 한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기구 개편의 비전과 논의 방향에서는 방송.통신 융합에 부응하는 미래 지향적이고 효율적인 행정체계의 구축을 내세우고,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현실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최적의 방안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번 개편안이 이런 평가를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팽배하다. 통합기구의 운영체계는 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합의제를 담고, 방송 및 통신의 진흥을 위해선 독임제(獨任制)적 성격을 넣었다고 하는데 이는 '한 지붕 두 가족'의 기구통합 형태를 띠는 어정쩡한 모습이다. 실질적인 기능 조정을 통한 화학적 결합은 이루지 못했으니 통합기구가 원활히 작동할 것인가에 대해 의구심을 낳고 있다. 통합위원회의 작동 메커니즘이 독임제 영역에서는 장관급 위원장과 차관급 부위원장 등 위계에 따라 결재받고, 합의제 영역에선 모든 위원이 동등하게 논의하겠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냐는 점에서 그 효율성도 문제다.

통합기구는 600~700명 정도의 덩치 큰 행정기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 흐름이 규제 완화 추세인데 이렇게 거대한 '공룡기관'이 탄생하면 주로 규제 메커니즘으로 작동하게 돼 방송.통신 융합의 화두인 '경쟁'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규제 기능과 정책.진흥 기능의 적절한 분배와 집중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시대에 역행하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위원의 구성은 5명으로 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위원의 추천 또는 동의 절차에서 국회의 관여 방안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무엇보다 방송.통신 융합을 어떻게 바라보고 풀어 나갈 것인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방송과 통신 모두 하나의 산업으로 보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따라서 통합기구는 '지원'과 '육성'에 초점을 두고 정책을 펼쳐야 한다. 동시에 방송의 영역에서 정치적 독립성과 공정성 또한 절대적으로 보존해야 할 가치다. 이런 측면에서 거대한 통합기구가 산업진흥정책과 방송 고유의 독립성을 함께 아우를 수 있는지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대안으로 우리의 현실 속에서 '공영방송위원회'를 구성해 공영방송만큼은 '청정 공공영역'으로 만들어 방송의 공정성과 독립성이 보장되게 할 수는 없는가. 이 외 민영방송 및 신규 융합서비스, 그리고 정보통신 영역에 대해서는 공정 경쟁 속에 산업적으로 성장.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체제를 구축하는 것도 바람직한 방안이다. 더 나아가서는 콘텐트 진흥을 담당할 부서를 둘러싸고 나타나는 갈등을 아우르는 보다 거시적인 부처 개편 방안에 대해서도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추진위가 제기한 이번 방안을 시작으로 진정 미래 지향적이고 효율적인 기구 개편을 위한 2단계 논의에 착수하길 바란다.

박천일 숙명여대 교수·언론정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