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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뛰어난 씨름선수 처녀들의 우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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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몽골에는 우리나라의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와 같은 「나담(나달모) 축제」가 해마다 열린다. 「나담(나달모)」이란 말은 오락 또는 놀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 축제는 오보(서낭당)를 모신 다음 축제를 시작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놀이문화와 유사하다. 우리네 큰 놀이판은 신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곧 자기 조상신에게 제사를 지낸다거나 서낭당·산신당에 미리 고하고 놀이판을 벌이기 때문이다.
예부터 몽골인은 민족 전체가 삼예-씨름·말타기·활쏘기(포노던지기)-로 단련돼 왔다. 그 기록은 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안의 객소장에서 발견된 K140호 고분에서 한나라 초기 흉노의 유물로 보이는 두점의 동판이 출토되었다.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동판의 그림 중앙에 두 장사가 씨름을 하고 있는데, 상체는 발가벗고, 하체는 꼭 낀 긴 바지를 입고 서로 허리를 껴안고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시합을 하고 있다』고 했는데 지금의 몽골식 씨름과 똑같다.
몽골족은 무를 숭상하는 민족인지라 칭기스칸은 자기 민족에게 용감하고 민첩하며 용맹스러운 민족 기질을 고양시키기 위해 「삼예훈련」을 병사 뿐아니라 민족적 훈련으로 삼았던 것이다.
「나담」에 대해 어떤 학자는 오보축제(오포회)가 나담이라고 하고, 해방 후에 비로소 나담이 생겼다고도 하나 아직 정설이 없다.
「칭기즈칸 석문」 기록에 의하면 일찍이 1225년 칭기즈칸이 화자자모를 패배시킨 후 포소재 해변지방에서 성대히 나담축제를 거행했다.
그 후 몇 세기를 내려오면서 승전이나 군인집회 및 맹기집회, 관원승진 등의 경축행사 때 남자들의 연삼예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나담대회가 거행되었다.
나담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 해도 씨름이다. 씨름은 고구려인들도 매우 좋아했던 것으로 짧은 바지를 입고 서로 겨루는 무덤그림에서 볼 수 있다.

<파림의 전설 남아>
또한 고려 때의 충혜왕이나 조선조의 세종대왕과 같은 임금들도 씨름에 큰 관심을 보였다. 임금을 옹위하는 갑사도 씨름꾼 가운데서 뽑았고 명종 때에는 씨름의 열기가 지나쳐 진 편이 이긴 편의 씨름꾼을 살해한 일까지 있어 사헌부에서 이 놀이를 금한 적도 있었다.
나담축제는 군중집회로 파탁이, 즉 영웅(용사)쟁취대회의 성격으로 변했다. 동몽골에는 다음과 같은 「씨름선수 파림」의 전설이 전한다.
『조주목왕은 50세 생일잔치 때 나담축제를 개최했다. 그는 실력이 가장 강한 파림이라는 씨름선수를 지게 하려고 음모를 꾸몄으나 연달아 실패했다. 왕은 파림에게 말하기를 우승자에게 줄 금·은·보화 한 수레를 준비했으니 궁궐에 가서 가져오라고 했다. 그는 30리나 되는 궁궐로 달려가서 한 수레의 금·은·보화를 끌고 돌아왔다. 너무나도 힘이 들어 어지러웠으나 왕은 물도 못 마시게 하고 궁궐의 씨름선수와 시합에 임하라고 명했다.
서민 출신인 파림은 잔혹한 왕의 흉계를 이겨내겠다는 일념으로 발에 힘을 주어 마침내 상대 선수를 메어 꽂았다. 그러나 왕은 끝내 포수를 시켜 파림을 죽이고 말았다.』
이 몽골이야기 역시 씨름경기의 극렬한 승부욕과 쟁취욕을 주제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경기에 이긴다는 것은 영웅의 탄생을 의미하기 때문에 누구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나담에서는 매번 우승자가 배출되는데 우승자에게 주어진 파탁이라는 명성은 즉시 초원에 전해지며 동시에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게 된다. 한편 아가씨들은 우수한 씨름선수와 사랑할 수 있는 것을 최고영광으로 여겼다.
근래의 나담축제에는 마술·육상·문예활동 등이 추가되었으나 남녀 모두 참가할 수 있는 삼예가 여전히 그 주요내용으로 민중의 사랑을 받는다. 북경에 있는 몽골족들은 고향을 떠난 지 오래 되었지만 아직도 고향의 삼예에 대한 향수를 달래기 위해 재북경 몽골족의 나담축제를 격년제로 개최한다.

<씨름가 울려퍼져>
몽골씨름은 경기장이 따로 없다. 원시적으로 맨 땅도 좋고 초원도 좋다. 씨름선수를 「포혁심」이라고 부르는데 건강하고 철탑처럼 체격이 우람한 용사를 가리킨다. 과거에는 일반적으로 모두 자기가 만든 씨름복을 입었으나 오늘날은 공용 씨름복도 있다. 등과 두 팔만을 덮은 상의를 「쪼덕」이라고 부르는데 가죽으로 만들었으며 꽃무늬로 수놓았고 어깨가 두툼하다. 등부분은 무늬가 많고 그림장식도 많아 입으면 갑옷을 입은 것처럼 위풍당당하게 보인다.
하의는 「쇼덕」이라고 하는 펑퍼짐한 것으로 바깥에는 꽃이나 구름무늬의 길상무늬를 수놓아 화려하고 현란하다. 씨름선수는 전통적인 포리아이화나 천으로 된, 꽃이 수놓아진 마해화를 신으며 머리에는 홍·남·황색의 3색 두건을 감고, 목에는 장식물로 오색띠를 두른다. 시합이 시작되면 명성이 나 있는 몇몇의 연장자(후견인)가 씨름꾼들을 이끌고 식장에 입장한다. 이때 출전하는 선수를 위해 화려하고 웅장한 씨름노래가 장내에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노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장사여- 날아라!
장사여- 날아라!
칠발리(거리단위)에서부터 춤추듯이 와서
산과 대지를 진동시키는구나.
팔발리에서부터 덩실덩실 와서
산천을 떨게 밟는구나.
앞으로 보노라니
마치 한 마리의 맹렬한 표범 같고
뒤로 언뜻 보노라니
마치 한 마리 수사자 같구나.
그대는 맹호같은 힘이 있고
그대는 수사자같은 몸매가 있구나.
씨름선수들의 기교는
너무도 놀랍구나!
이때 장사, 곧 씨름선수는 수매의 동작을 모방한 매춤을 추며 허리와 가슴을 펴 마치 수매가 양 날개를 상하로 움직여 위엄을 과시하듯 행동한다. 두 씨름 선수는 막 뛰어나온 사나운 투우처럼 서로 접근해 몸을 약간 숙이고 앞을 바라다보기도 하고, 곁눈질도 하며 매섭게 노려보기도 한다. 그들은 씨름장을 돌면서 매우 조심스럽게 기회를 찾으며 못 기다리겠다는 듯이 손을 비비기도 하고, 앞으로 나아가 공격하기도 하며, 한쪽으로 피하다 이내 기회다 싶으면 눈 깜짝할 사이 격투가 시작된다.
씨름선수가 싸울 때는 키가 크고 힘이 센 선수가 작고 약한 선수의 샅바를 잡고 들어서 계속 돌리다 상대방이 평형감각을 잃고 속수무책이라고 여겨지면 힘껏 넘어뜨린다.
반대로 키가 작고 몸이 약한 선수는 상대방이 어떻게 들어올리고 돌리든지 내버려두었다가 상대방이 땅에 던지길 기다려 즉시 발에 힘을 주어 안전하게 서거나, 아니면 상대방이 계속 돌리다 힘이 빠졌을 때 발을 살짝 걸어 넘어뜨리기도 해 마치 우리네 씨름 기교와 흡사하다.

<예의중시의 국기>
몽골족의 씨름은 등급을 가리지 않고 최후의 우승·준우승까지 차례차례로 도태시키는 방법을 쓴다. 나담축제에는 매년 5백12명의 씨름선수가 참가해 경기를 벌이는데 토너먼트 형식으로 경기를 진행한다. 모두 9회전을 거친 뒤에 우승자가 가려진다.
나담축제중 씨름대회 입상자에게는 명예로운 칭호를 주게 되는데 우승자는 「아루스탄」(사자), 준우승자는 「잔」(코끼리), 3위는 「나친」(매)이라 호칭한다. 또한 두 번 이상 우승하면 「거인」, 세 번 이상 우승하면 「대거인」, 네 번 이상 우승하면 「무적 대거인」이라는 칭호까지 얻게 된다.
몽골 씨름에서 흥미로운 점은 승부가 결정날 때다. 승부가 결정되면 승자는 후견인으로부터 모자를 받아쓰고 패자는 조끼 끈을 풀어 승자가 벌리고 있는 팔 밑으로 한바퀴 돌아 동물처럼 복종의 표시를 한다.
몽골씨름은 이처럼 예의를 준수하고 음악과 무용이 곁들인 예술적 국기란 점에서 우리네 씨름판과 다르다. 몽골씨름은 원시적인 인상이지만, 한편 과거 한국 씨름의 원형을 보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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