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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책임전가만 할땐가/의혹 당사자의 소속기관도 할일 있다(사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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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6공 최대 의혹이라 할만한 「수서특혜」사건으로 보름째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주무부서인 서울시나 건설부는 물론,국회와 여야정당·행정부의 수뇌부까지가 일개 부동산재벌과 유착돼 빚어낸 전례가 드문 「총제적 비리」라는데서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의원 뇌물외유·예능대 입시범죄에 이어 터져 나온 이번 사건은 우리사회의 힘깨나 쓰고 돈깨나 있는 사람들의 구조적 부조리가 어디까지 가 있는 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게 할 수 있는 힘있는 사람들의 권능과,돈 있는 사람들이 쥐었다 폈다 했다는 검은 돈 거래 의혹은 땀 흘려 생계를 꾸려 나가는 보통사람들을 무력감과 패배감의 늪에서 헤어나기 어려운 지경에 몰아넣고 있다.
사안이 이러함에도 강 건너 불보듯 하는 것 같은 정치권 수뇌부의 대응태도를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직접 개입된 실무당사자들이 탁구공처럼 책임을 떠넘기고,심지어 행정책임자가 전임자까지 끌어들여 이전투구의 공방을 벌이고 있는데도 수뇌부는 말이 없다.
행정행위 자체의 타당성에 하자가 있고 결정과정에 무리가 있었음은 분명해졌다. 그러함에도 청와대와 여야정당·국회건설위·건설부·서울시는 서로 눈치만 보고 떠넘기기에만 여념이 없는 웃지 못할 촌극을 벌이고 있다.
권한은 주장하고 책임은 회피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은 허탈감에 빠져 있다.
청와대비서관이 개입됐고 소속의원이 연루됐을 뿐 아니라 정당 자체가 관련되어 있는 사건인데도,그 조직의 책임자가 자체조사를 통해 사실을 규명하려는 노력을 외면하는 태도를 우리는 이해하기 어렵다.
직권을 남용하고 뇌물이 오갔다는 의혹이 일반에서는 의심의 여지없이 널리 전파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같은 조직책임자의 태도는 또 하나의 의혹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감사원의 행정절차 감사나 책임전가식의 국정조사가 이름은 그럴듯 하지만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고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우리는 생각하지 않는다.
본란이 이미 지적한대로 거기에서만 끝난다면 그것은 사건의 철저한 규명보다는 적당한 은폐의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마저 없지 않다. 관련 단위조직들은 우선 자체조사에 나서고 잘못을 고치려는 태도를 보여야 하며,감사에는 검찰수사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이에 더해 근본적으로 이번 사건을 해결하는 길은 첫째,정부는 특혜분양을 철회하고 둘째,타당성을 잃은 행정행위에 관련된 행정책임자를 비롯해 관련 공무원을 행정적으로 문책해야 하며 셋째,외부압력이 배제된 검찰권 행사로 직권남용이나 뇌물수수등 비리를 철저히 규명한뒤 형사처벌하는 것 뿐이라고 우리는 본다. 반드시 선후를 따지거나 동시에 할 필요는 없다.
법을 악용하고 편법과 탈법으로 이루어진 행정행위가 정당화된다면 사회정의는 발붙일 수 없을 것이며,보통사람들의 정부나 국회에 대한 불신은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될 것이다.
똑같이 이번과 같은 비리와 물의를 빚은 공직자가 정부내에서 용납되어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킨다면 그 정부를 국민이 따르기는 어렵다. 더 나아가 이번과 같은 힘있고 돈 있는 사람들의 합작 부조리극이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의 법정의는 실종되고 말 것이다. 제도권의 수뇌부가 진지하게 수습에 나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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