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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의 관행」 고리를 끊자/장두성(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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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 3년여동안 우리는 민주화를 이야기해왔고 이른바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함을 이야기해 왔다. 그러나 그런 개념을 실생활에 대입시켜 무엇이 민주화며 무엇이 발상의 전환인지를 깊이 생각해보고 행동으로 실천하는데는 크게 미흡했다. 세상은 크게 변하고 있는데 말로만 거기에 발맞추라고 소리쳤지 실제로는 옛날 그대로의 습성,더 이상 용납될 수 없는 「관행」들을 조금도 변함없이 반복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국회의원들의 뇌물성 외유나 계속 번지고 있는 예능시험 부정사례 등이 「민주화」시대에 오히려 더 기승을 부리고 그런 관행이 더욱 굳혀져 갔다는 증거를 보면서 느끼는 충격은 변화가 불가피한 시대에 변화를 외면해온 우리 사회의 단면을 확인해 준데서 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충격은 개탄만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행스럽게 여길만한 의미를 갖고 있다. 안으로만 곪아오던 사회의 병리,당사자들은 모두 알면서 누구하나 선뜻 나서서 「노」라고 말하지 않았던 환부가 우리 모두의 눈앞에서 터지고 거기서 구역질나는 고름이 펑펑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이다.
뒤늦게나마 이렇게 된 이상 우리가 할 일은 고름을 말끔히 씻어내고 그 안에서부터 새살이 돋아나오도록 소독을 하고 약을 바르는 일에 집중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모두가 알면서 방관하고 현실이란 으레 그런 것이라는 통탄할 공범자적 자세에서 분연히 일어나 「노」라고 소리칠 계기가 온 것이다. 그런 행동이 정치개혁 못지않게 절실한 사회의 민주화요,발상의 대전환이 보여줘야 할 현실생활속의 모습인 것이다.
정치인이,고급관리들이 외국여행을 떠날때 관련단체에서 「여비」를 보태주는 것은 이른바 「민폐」의 조그만 부분에 지나지 않는 관례화된 비리다. 길흉사때 즐비하게 늘어서는 그 휘황찬란한 화환의 행렬,명절마다 오가는 돈봉투·선물꾸러미들이 다 무엇인가. 그런 것들은 표면에 조금만 드러난 비리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 비리는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 다같이 죄의식없이 그저 관례라는 미명 아래 오랫동안 안으로만 쌓여온 고름이다. 권력주변,이권주변에서 그런 환부가 없는 곳이 어디있는가.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번에 문제가 된 세 의원들의 경우는 분명 억울한 면이 있다. 그들은 아마 우리보다 훨씬 더 받아먹은 동료들이 수두룩한데 왜 하필 우리만을 속죄양으로 만들려는가,땅을 치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회기중 구속동의안이 나올듯 말듯 하다가 결국 흐지부지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까지 번연히 불법임을 모두가 알면서도 용납되어온 비리의 관행은 이제 통할 수 없게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이들의 「억울함」은 입증해주고 있다. 이 사건은 꼭 그런 발상의 전환을 모두에게 확인시켜주는 방향으로 엄중하게 마무리되어야 한다.
그래서 권위주의 시대 권력과 이권 주변에 수없이 굴러다니던 「임자없는 돈」이 기실은 국민의 돈이며 그걸 적당한 구실로 떼어 먹는 관행이 분명한 죄라는 사실을 확인해 줄때 우리의 민주화 개혁은 그만큼 내실을 찾게 되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능력과 별관계없이 예능계대학 입학이 돈으로 거래되어온 「관행」이 백일하에 드러난 것 또한 참으로 잘된 일이다.
목관악기부터 시작해 첼로·클라리넷·비올라가 부정의 대상으로 등장했다. 이제 모든 악기들이 줄줄이 부정입학의 매개체로 묶여 나오는 기상천외의 모습을 보게되리라는 심증이 굳어져가고 있다. 고름이 괴어있는 곳이라면 이 기회에 모두 터뜨려야 한다. 그래서 새살이 돋게 해야한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더구나 올림픽을 치러 이제 선진국 대열에 끼게 되었다고 으스댄 나라에서 시험 감독관은 감독관대로 서로 범죄적 암호를 교환할까봐 칸막이한 자리에서 채점하고 수험생은 또 그들대로 얼굴을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복면을 하고 입학시험을 치르는 곳이 있는가.
이런 식으로 가다간 채점자를 외국에서 수입해야겠다는 소리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입학한 학생이 교수를 존경은 커녕 협잡꾼으로 멸시하지 않으리란 법도 없다.
그런 최악의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이번 사태는 절호의 기회가 되어야 한다. 이번에도 흐지부지해 기회를 놓치면 두번째 기회는 영영 오지않을 수도 있다.
맨먼저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지금 죄인시되고 있는 분야에서부터 나와야겠다. 거미줄처럼 얽힌 공범의 구조를 법으로만 다스리기에는 규모가 너무 방대하고 근친상간식으로 얽히고 설킴이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독재 아래서 민주화선언을 하고 저항하던 그 열의로 구조화된 부패를 척결하려는 노력이 고름 밑바닥에서 새살처럼 솟아나와야겠다.
불법주차한 고관차에 딱지를 붙인 그 단속원이 보여준대로 지금까지 용납되어온 불법행위가 지금부터는 용납될 수 없다고 선언하면 비리의 관행은 그 정도만큼 위축되고 우리 사회는 그만큼 정상화로 방향 전환을 하게 될 것이다.<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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