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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학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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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객관적 문제의식 갖고 현실참여 사회현상 역사과정서 찾아내야 이만신<서울대 명예교수>>
학문하는 자세에 관해 사회과학자들에게 세 가지를 당부하고 싶다.
첫째는 학문에 투철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다. 직업이 다양화되고 있는 오늘날 누구나 자기가 수행하는 직업에 투철한 사명의식을 갖는 것이 강력히 요청되고 있지만 학자에게는 그것이 더 절실하다.
현대사회에서의 지식과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토플러였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그는 21세기를 「지식이 곧 권력」이 되는 시대로 특징지은 새로운 저서를 발표하고 있다. 그처럼 지식의 중요성이 더해가고 있는데도 학자들 중에는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관념에 사로잡혀있는 사람이 적지 않은 듯 하다. 그들은 한편에서 중앙집권적 관료사회의 가치관에 좌우되어 아직도 벼슬에 매혹되고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편에서 자본주의적인 가치관에 현혹되어 재부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권력과 재부가 인간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학문하는 사람에게는 그것은 학문하기 위한 수단으로 고려되는데 그쳐야한다.
둘째는 바른 문제의식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과학자가 다루는 현상은 사회현상이다. 다시 말하면 그 속에 참여해 거기에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느끼면서 책임 있는 행동을 취하고 있는 그 현상을 연구하고 있는 것이다.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관찰·분석·해석은 가급적 객관적이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참여하고 책임성 있게 살면서 동시에 객관성을 기할 수 있는가. 거기에는 완전한 답이 있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성실하게 체험하는 한편 감정이입과 그밖에 사회과학자들이 지적한 방법들을 깊이 음미하면 바른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사회과학도로서 가장 바람직스럽지 않은 태도는 현실에 참여하여 체험하지 않고 「무립장」에서남의 지식을 전달하는데 그치는 것이다. 거기에는 심각한 문체의식이 생길 리 없고 따라서 창조 의욕도 강하게 불탈 수 없을 것이다.
세 번째는 인간에 관해서 옳게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회과학자가 사회현상에 관심을 갖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사회현상은 인간의 현상이기도 하다. 인간은 물론 사회적인 존재이지만 동시에 문화적인 존재이며 또한 심리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사회·문화·심리의 밀접한 관계는 모든 사회과학자들이 잘 알고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인간이 생물학적인 존재인 동시에 생리학적인 존재라는 것을 깊이 명심하고 있는 사회과학자는 많은 것 같지 않다. 오늘날 인간의 생물학적·생리학적 특성에 관해서 많은 새로운 지식이 축적되고 있다. 그 지식을 알면 사회현상에 관해 엉뚱한 얘기를 하는 일이 훨씬더 감소될 것은 분명하다. 사회과학자는 표면에 나타나는 사회현상만이 아니고 오랜 진화과정과 역사과정에서 형성된 인간의 성질, 인간의 마음을 옳게 이해해야만 인간이 서로 부닥치며 야기되는 사회현상을 보다 바르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서구문화 벗어나 세계적 관목을 학문 후진성으로 사회 발전 저해 안병욱<성심여대교수>>
요즈음 우리사회는 얼마간 초조한 기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숨가쁜 변화 속에서 많은 일을 해낼 것처럼 보였는데, 부풀어 오른 기대감에 비해 손에 잡히는 성과는 없다. 흥분해 설레던 것과는 달리 현실의 벽은 달라지지 않았다. 뒤돌아보면 그동안우리는 기껏 제자리를 맴도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사회가 수많은 파동을 겪으면서 나름대로 쌓아올린 업적들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진보를 이루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도는 것은 우리나라학문의 후진성 때문이다. 모든 사회활동을 올바로 인도해내고 그 결과로 얻어진 소득을 역사적으로 축적해 발전을 이룩하는 기초는 학문으로부터 마련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학술활동은 이러한 기초를 사회에 체공하지 못하고 있다. 학문연구자들은 민족적이고 역사적인 관점에서 비롯되는 실천적인 의지보다는 대부분 개인적인 차원의 이해관계를 우선 시 했다. 사회발전을 위한 진보 성보다는 수구적인 합리화나 혹은 가식적인 선진 성을 더 앞세워 왔다. 때로는 지적유희에 지나지 않는 논쟁에 머물거나 혹은 민족 고유의역사적인 경험을 의래 사조의 장식물로서 밖에 평가하지 못했다.
이것들은 외세의 간섭과 오랜 독자의 억압아래서 형성된 것으로 우리사회의 정상적인 발전을 가로막는 요소들이다. 바깥 세상은 저만치 앞서서 내달리고 있는데 우리는 한세대 이전의 낡은 틀에 아직도 구태 의연히 머물러 있을 뿐이다.
이제 우리는 서구문화의 중독에서 벗어나 국제적인 안목을 길러야 한다. 그러한 수준에서 비로소 세계사의흐름을 정확히 인식할 수 있으며 우리 문제에 올바르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국제적인 안목은 한국학이 국체사회에 주체성을 가지고 창조적으로 기여할 때 그 대가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미국적 이론의 실험장으로 분석된 것이나 혹은 민속에 대한 호기심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 것들은 진정한 한국학이 될 수 없다. 미국이나 일본사람의 기호에 맞추어 각색된 것은 더 이상 우리 학문이 아니다.
따라서 한국사회를 연구하고 분석하는 자율적인 기준을 확립해야 할 것이다. 이 기준은 우리사회의 민족적인 과제를 떠나서는 마련될 수 없다. 역사적 전통에서 그 토대가 마련되고 현실적인 실천으로 귀결을 얻을 수 있다.
우리사회의 참다운 가치는 무엇이며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가를 폭넓게 확인해야한다. 오랫동안 허구적인 가치관에 찌들려 온 까닭에 옳고 그른 것과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을 제대로 구분해내기 어렵다.
민주화를 외치면서도 무엇이 민주사회인가에 대해서는 각자의 인식이 다르다. 민족의 통일을 외치면서도 접근방식은 반통일적인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문제는 학술활동이 역사를 선도하지 못한데서 비롯되는 일이다. 대중들의 정서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사회발전의 동력으로 묶어 내는 일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학문의 후진성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를 창조하는 힘은 그 밖에서는 찾아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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