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과 감동을 주는 「형상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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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올들어 호암갤러리의 첫 전시회로 열리고 있는 임옥상회화전을 두고 미술계에서는 벌써부터 화제가 난무하고 별의별 억측까지 나돌고 있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운동권미술또는 민중·민족미술계열에 있는불과 41세의 화가인 임옥상을 다른 곳도 아닌 호암갤러리에서 초대했으니 「이만」치고도 보통 이변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구설수도 막상 전시장에 들어서게 되면 『과연 그럴 만한 이유가 충분히있었구나』라는 해답을 스스로 얻게 된다.
미술관이 제도권과 운동권으로 갈라지는 바람에 제도권 전시장에서는 임옥상의 작품이 선보일 기회가 지난 10년간 거의 없었지만 그는 80년대초부터 이미 형상의 힘을 누구보다도 능숙하게 구사한 대형작가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의 표현언어는 언제나 우렁찬 목소리로 울려퍼지는 유참한 웅변을 연상케 한다. 그런가 하면 화면구성은 대단히 연극적이어서 우리가 흔히 공연예술에서 말하는 드러매틱하다든가 스펙터클을 갖추었다는 표현에 가장 갈 어울리는 그림세계를 그는 보여 주었었다.
『두나무』를 휘감고 돌아가는 바람, 지평선이 보이는 들판한쪽 『웅덩이』 에서 일어나는『불기둥』, 오곡이 잘익은 비산비야의 농촌마을에 느닷없이 나타난 불길한 『새』·『보리밭』에서 이쪽을 노려보는 어떤 남자의 불쾌한 눈초리, 지구끝까지라도달려갈 듯한 열차의 모습으로그려낸 『무』….
이처럼 그의 그림은 사실걱인 공간에 예상밖의 상황을 접합시킴으로써 그 사실성을 더욱 강화하기도 하고 또는 겉으로드러난 모습은 진실이 아님을증명하기도 한다. 따라서 임옥상의 그림에는 화가의 주관적 해석이 들어가 있으며, 그가 겨냥하는 조형목표는 감동이거나충격이며 최소한 예감이어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80년대 민족·민중운동속에 직·간접으로 참여하면서 임옥상의 역사의식과 현실인식 태도는 성숙·변모했고 작품세계에서도 놀라운 자기발전을 이룩했다. 그 구체적인예술적 생산물이 곧 『아프리카현대사』다. 50m의 대작인 이 웅장한 스케일의 두루마리 그림은 연극이나 시처럼 시간성을갖지 못하는 회화장르에 그 시간성을 동시축략시키는 회화나름의 방법을 응용하여 테마와 에피소드처리를 효율적으로구사함으로써 장대한 다큐멘터리로 성공한 야심작이었다.
그리고 찢겨진 아프리카 대륙을 상징하는 흑인의 등어리와 「아직도 아프리카는 죽지 않았다」는 핏발선 흑인의 눈동자는회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표현이었다고 할 명작이다. 더욱이 이작품은 아프리카의 수난과 현실을 세계사적 관점에서 다루면서 그것이 귿 우리의 현실,우리의 이야기로 번안시켜 낸 점에서 더욱 큰 감동을 받게된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림을이처럼 재미있고,충격적이고,연극적이며, 이야기꾼식으로 풀어나가 보는이를 감동시킨 화가는 임옥상외엔 없었던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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