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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 왜 피곤한 삶을 사나?

중앙일보

입력

시인 윤동주는 정말로 맑은 영혼의 소유자였던 모양이다. '식민지 조국'이라는 비극적인 시대엔 그는 멀쩡히 살아 숨 쉬는 것조차 부끄러운 일로 생각했다. 부조리한 현실을 인식하곤 있지만 정작 그 현실을 변화시킬 어떤 일도 할 수 없었기에, 그는 늘 산다는 게 부끄러웠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랐던 그는 그래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며 고개를 떨어뜨린다.
하지만 이처럼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하지 못했기에 자책했던 한 시인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지식인의 슬픈 숙명과 마주치게 된다. 지식인들은 언제나 시대의 모순과 불의에 대해 마주서야. 또 그들은 교묘하게 작동하는 폭력과 부조리를 발견하고 감시해야 하며, 폭력적인 권력의 모든 사례와 마주쳤을 때 목숨을 걸고 그것과 맞서 싸울 수 있어야 한다.
게다가 그들을 더욱 힘들게 만드는 건, (사르트르의 지적처럼, 그리고 윤동주의 시 구절처럼) 그와 같은 투쟁 속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몰아넣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자신에게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는 폭력과 모순의 고리를 발견하고, 그 같은 자기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 그는 또 한 번 양심과 힘든 싸움을 벌여야 한다.

물론 그것은 고단한 일이다. 세상에 대해, 자신의 삶에 대해 언제나 반성해야하는 삶은 솔직히 피곤하다. 모른 척 평범하게 살 수 있다면 쉽고 편할 텐데. 그런데 왜. 왜 지식인은 그토록 피곤한 삶을 살아야만 할까. 그리고 왜 하필이면 지금, 입시 준비에 한참 바쁜 오늘, 학생들에게 이 문제를 던져야만 할까.
그것은 그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바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공부를 하고 있는 여러분이 바로 지식인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식인의 사회 참여가 반드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도 아니며, 정치가가 아닌 그들의 임무는 학문적 영역에서의 진리 탐구에 제한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그 특성상 이전보다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영역들이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 사회다. 따라서 어느 영역의 전문가인 지식인이 사회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되레 심각한 책임 회피이며 직무 유기일지도 모른다.

프랑스 철학자 미셀 푸코는 세상에 속하지 않은 진리, 권력과 관련되지 않은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만약 그의 말처럼 정말로 진리의 체제가 우리 사회의 구조와 기능에 본질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면, 지식인이란 그 한가운데에서 작업하고 싸우는 존재여야 할 것이다. 어떠한 지식이나 진리도 권력의 구조 속에서 특권화 될 수 있으며 폭력으로 변할 수 있다. 따라서 지식인의 역할은 바로 그러한 진리의 속성마저도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더 이상 제국의 식민지가 아니라고 해서, 시대의 위험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니다. 독재자가 정권을 쥐고 있지 않다고 해서, 그 사회가 정의로운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겉으로 보이는 위협이 사라졌다고 지식인의 임무가 끝난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억압의 메커니즘은 더욱 교묘하게 작동한다. 진리를 가장하는 '열린사회의 적'은 눈에 보이는 직접적인 폭력보다 더욱 위험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며, 어느 누구든 노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은 이 시대의 고귀한 진리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나 누구나 이 세계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그와 같은 믿음은 현실과는 많이 다르다. 상위권 대학의 진학률이 지역에 따라 다르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계층 간의 격차는 벌어지고 그 사이의 장벽은 더욱 단단해지지만, 이 시대의 성공 신화는 문제를 깨닫지 못하도록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나도 노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가 사람들로 하여금 진짜 현실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지식인의 역할 혹은 진리의 문제는 상위권 대학에서 종종 출제되는 논제들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논제의 출제 가능성이 아니다. 그보다는 이제 곧 대학이라는 학문의 공간에서 진리를 탐구하게 될 여러분이 결국 이 사회의 주인임을 깨닫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주인의 자리에 걸맞는 사회적 책임감을 갖고, 이 사회의 수많은 모순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해보는 당신은 멋지지 않을까.

또박또박국어논술학원 고등부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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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출문제
-이화여대 2007학년도 수시1 <문제 6∼8>
-한국외대 2007학년도 수시1 <문제 2>
-서울대 2005학년도 정시
-서울대 2005학년도 수시2 <특기자>
-고려대 2005학년도 정시
-고려대 2003학년도 정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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