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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10년,성쇠의 고비/김경동(시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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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번 신정연휴는 비교적 「차분한」 가운데 지냈다는 것이 언론매체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분위기가 차분해진 까닭이 주로 그 사이 분수에 걸맞지 않게 들떠 있던 우리의 경제심리가 이제 좀 가라앉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면,이는 분명 반가운 증좌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지난해 초장부터 총체적 난국에 직면해야 했고 파장에 와서까지 회복의 기미는 커녕 바닥경기에 시달려야 했던 우울함에다 올 연초부터는 어두운 전망들만 무성한 탓으로 차분해질 수 밖에 없었다면,이는 참으로 심각한 징후다.
○10년주기 사회적 변화
1년전만 돌이켜보아도 이른바 대망의 21세기를 향한 금세기 마지막 십년대의 첫해라 하여 좀 지나치다 싶으리만큼 희망에 부풀어 1990년부터는 무엇인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대를 품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정작 한해를 마무리한 손익계산서는 그러한 기약에 비하면 너무도 어처구니 없다는 느낌이 들게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 자리에서 굳이 지난해의 먹구름을 되새길 나위는 없고 다만 우리가 이제부터 가야할 길을 모색하자면 과거에 겪어온 사회 경제적 변동의 성격을 이해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작금의 내리막 추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성찰하게 된다.
적어도 광복후의 경제적 흐름과 그에 따른 사회적 변화를 10년단위로 분석해 보면 묘하게도 말기에서 초기에는 침체나 변란을 겪은 다음,중반에서 회복하기 시작하다가 다시 연대말에는 곤두박질을 치는 순환을 경험하였음을 관찰할 수 있다.
가령 1950년대 초기에는 전쟁이 터졌고,1960년대에는 4·19와 5·16,1970년대에는 유신정변,1980년대에는 광주사건과 5·17사태 등이 차례로 발생하였다. 이 시기에는 경제도 무척 어려웠던게 사실이고 중반기에 가서야 각각 전후 복구,경제개발,중화학 발흥,또는 삼저호기와 올림픽경기 등의 상승기류를 타고 회복국면으로 접어들곤 하였다.
○경제커져 조정 어려워
그러나 매 10년대말로 가면 사정은 도로 악화되어 드디어 커다란 정치 경제적 변혁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았다. 이와 같은 주기적 변동은 물론 세계적인 경기순환의 영향을 민감하게 반영하였다. 만일 그러한 주기가 앞으로도 되풀이 된다면 현 시점에서 우리는 밑바닥에 내려앉아 있는 셈이고 몇해만 잘 버티고 나면 호전되는 시기를 맞이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과거의 순환과 오늘의 상황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주목하여야 한다. 첫째로,전에는 우리가 웅덩이속에서 헤어나려고 할 때마다 국제적 정치 경제사정이 유리하게 전개되는 운이 따랐었다. 요즘처럼 선진국에 의한 무역압력같은 장애는 없었고 동남아 신흥공업경제의 추적도 없었다. 게다가 중동전쟁까지 겹치면 이전의 유가파동 같은 것은 문제도 되지않는 타격이 오게된다.
둘째로,당시에는 그래도 국민의 정신이 해이해지지 않아서 국제적으로 어려움이 닥치거나 국내 정치가 엉망이 되어도 각계각층의 국민이 모두 눈 감고,참고,허리 졸라매고 격랑을 함께 헤쳐 나가려는 강인한 의지가 시퍼렇게 살아 있었다. 외국인이 볼 때 눈에 살기(?)가 돈다는 인상을 줄만큼 억척으로 살아왔다.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그동안 구축해온 경제의 덩치가 너무 커져서 조정과 적응이 쉽지않다. 뿐만 아니라 경제를 좌우해주는 경제 외적 요소들은 더욱 더 까다롭게 얽혀버리고 말았다.
만일 우리가 오늘의 문제를 잘 풀어나가지 못하고 좌절하기 시작한다면 우리 사회의 장래는 가위 암담하다 할 정도로 현시점의 대응이 중요하다. 우리 사회의 국제적 위상이나 국민의 기대 수준,기호 및 체질이 이제는 지속적 경제성장을 하지 않고는 더 배기지 못하는 위치에까지 와 버렸기 때문에 여기서 경제침체가 계속 되어 실질적인 후퇴가 일어나게 되면 우리나라는 급격하게 후진국화할 것이고,국민들 사이에서는 폭동이 일어나 군사독재가 필요해지든가,아니면 급진 이념에 끌려가는 혁명이 가능해질 상태마저도 상정해 볼 수 있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수출신장을 위한 생산성 향상과 기술혁신이 시급하다. 결국 사람과 돈인데,돈은 어떻게 해서든 마련할 수 있다해도 사람의 자세정립,동기유발,창의력 신장,기능활용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기실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가 궁극에는 사람의 문제로 귀착하며 그중 으뜸이 마음가짐이다.
○돈 보다는 사람이 문제
사회구조의 문제,정치의 파행,기업의 제조업 기피,근로자나 일반국민의 일하지 않으려는 태도,끔찍해진 범죄,이 모두가 마음의 산물이다. 그 마음을 가꾸는 교육이 빗나갔으니 교육부터 고쳐야 하고 그 개혁의 의지도 마음먹기에 달렸다. 지금부터 몇해 안에 우리가 이 바닥에서 벗어나느냐 못하느냐가 민족의 통일과업을 포함하는 흥망성쇠의 고비라는 각오로 다시 한번 껑충 뛰어 오르는데 온갖 지혜를 모으고 힘을 쏟아야겠다.<서울대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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