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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화교들/모국어 배우기운동 한창(지구촌화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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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중국인 민족성 상실”자성/“화인화어”구호… 소수민족은 못마땅
싱가포르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화교들이 중국인의 민족성을 상실하고 있다고 자성,『표준 중국어로 말합시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중국어 배우기에 한창이다.
싱가포르 화교들은 일상어로 중국어 대신 영어를 쓰고 있어 대부분 자기 이름조차 한자로 쓰지 못하는 형편이다. 이들은 젓가락을 사용할 줄 모르는 것은 물론 중국의 역사도 거의 알지 못한다.
싱가포르의 제1인자인 리광야오(이광요) 전 총리조차 이름은 비록 중국어로 쓰지만 중국어보다 영어가 훨씬 유창한 편이어서 일상회화는 주로 영어로 얘기할 정도다.
싱가포르의 총인구 2백65만명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계를 비롯,말레이·인도계 등 싱가포르국민 대부분이 1∼2세대 전에 싱가포르로 이주해왔기 때문에 공통의 언어기반을 갖고있지 않다.
더욱이 같은 중국계라도 출신지역이 복건·조주·광동·객가족 등으로 각기 달라 이들 화교들끼리도 중국어로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결국 각 민족간의 원활한 의사전달을 위해서는 영어가 자연스럽게 공용어로 자리잡을 수 밖에 없었다.
특수 민족학교는 물론,일반 중국계 중·고등학교에서도 영어가 「제1국어」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중국어는 제2외국어정도로만 취급되고 있을 뿐이다.
영어만 완전습득하면 일상생활에서 불편함을 거의 겪지 않아도 될 뿐만아니라 사회엘리트로 진출할 수 있는 길도 활짝 열리게 된다.
이에 따라 일반가정에서는 어릴때부터 일상예의범절을 모두 영어로 가르치고 있을 정도여서 중국어가 끼어들 틈은 더욱 좁아질 수 밖에 없다.
중국어가 「고사」상태에 놓이고 중국인으로서의 주체성이 실종되는 사태에 이르게 되자 식자층내에서부터 반성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움직임은 영어에 시달려온 상당수의 싱가포르인들 사이에 급속히 확산됐고 마침내 표준 중국어 배우기운동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중국어 찾기운동이 전화교적인 공감대로 자리잡게 되자 화교가 대부분 장악하고 있는 싱가포르정부도 『앞으로 국민학교에서는 중국어를 제1국어로 삼겠다』고 발표하는 한편 동양의 유교적 가치관과 문화를 지키고 중국의 전통을 배우자는 캠페인을 전개했다.
현재 싱가포르의 일부 화교계 일간지에는 매일 「중국어발음 교정강좌」가 실리고 영화관에서도 영화상영전에 「화인화어」(중국인은 중국어로)라는 제목의 슬라이드가 비춰지는 등 사회전반에 걸쳐 「중국어 붐」이 충일돼 있다.
그러나 싱가포르 화교들의 실리적인 국민성으로 인해 실제 사업에서 중국어를 사용하는데 대한 반발이 크고 「중국어화」운동이 자칫 「중국화」로 연결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어 중국어 되찾기운동의 장래는 아직 불투명하다.
더욱이 소수민족들이 중국어 강조운동은 중국인들의 기득권 강화작업의 일환이라고 반발하고 있어 이같은 중국어 사용운동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미지수로 남아있다.<진세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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