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세계파수꾼 역할 불변|힘의 분원 여전...쇠퇴 론은 잘못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냉전 후 세계질서에서 소련이 열강의 지위에서 물러나고 경제대국 일본·독일이 경제력만이 뒷받침된「1차원적 세력」으로 계속 머물고 있는 현재 미국은 세계 최대열강의 위치를 더욱 굳히고 있다고 미 하버드대의 포드재단 국제안보담당교수 조제프 S.나이박사는 주장했다. 나이박사는 이 같은 미국의 힘은 이번 페르시아만 사태로 인해 더욱 분명히 증명되고 있다고 말하고 미 예일대의 폴케네디 교수(역사학)의「미국쇠퇴론」을 반박했다. 다음은 나이박사가 중앙일보에 기고한 신년특별기고 「변화하는 국제질서의 전망」의 요약이다.
냉전시대의 세계질서가 89년의 동구혁명과 9O년의 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전기를 맞았다.
「제2러시아혁명」으로 불리는 소련의 변혁은 아직도 초기 단계에 머무르고 있고 그 장래도 불투명하다. 소련이 열강으로서의 세력이 쇠퇴하는 동안 유럽은 경제단합이 추진되고 있으며 일본이 세계경제열강으로 부상했다.
새로운 세계질서는 그 형태가 확고하지 않으며 또 유동적이다.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소련을 봉쇄한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전략으로서. 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인식이 일반화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대한 적절한 대안이 무엇이냐에 대한 견해는 아직 합의점을 갖지 못한 상태다.

<양극체제 불가능>
소련이 강경정책으로 되돌아가 기존의 미소 양극체제가 부활 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소련에 강압적인 정부가 다시 등장, 군부를 완전히 장악한다 하더라도 지난 한세대동안 쇠퇴를 거듭해온 소련의 경제난을 해결 할 수는 없다. 오히려 더욱 악화된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세계질서의 양극체제가 부활할 것이라는 가정은 현실성이 없다.
다극화 질서의 세계를 예견하는 사람들도 있다. 2차 세계대전 패전국들인 독일·일본은 상당한 힘을 과시해왔다. 그러나 신 다극화체제가1930년대의 경우처럼 비슷한 힘을 가진 세력들이 동맹관계에서 이합집산을 하는 형태를 취할 것이라는 희망을 전제로 하고 있다면 이는 냉전 후 세계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실망만 안게 될 것이다.
일본은 경제력에서 1차원적인 세력으로 머물고 있고 통일독일마저도 미 경제의 4분의1 규모에 지나지 않는다.
유럽의 정치통합이 현재 의도되고 있는 목적을 훨씬 밑도는 수준으로 진행된다면 미국은 새 세계질서에서 가장 큰 단일세력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견해는 미국도 소련과 같이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는「인기 있는」주장과는 배치되는 것이다.
1980년대 발간된 상당수의 서적과 논문들은 미소의 쇠퇴를 기술하고 있고 특히 미국의 쇠퇴를 강조하고 있다.
예일대 폴 케네디 교수는 탈 냉전체제 속의 미국의 위치에 대한 현재의 논쟁들 가운데「쇠퇴주의자」와「부흥주의자」의 입장을 동시에 표방하고 있다.

<문제점 해결가능>
즉 케네디 교수의『강대국의 흥망』과 같은 저서에서는 군사강국은 약화의 길을 걷게돼 있다는 쇠퇴주의가 나타나 있다. 반면 필자의 저서『예정지배』등이 지향하는 부흥주의는 오늘날 미국의 제 문제는 교정이 가능하며 또 미국은 계속 지배세력으로 남게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미국의 힘이 2O세기 후반에 이르러 중반기보다 약화되고있는 것은 사실이다. 미국이 전세계 생산 중 차지하는 비율은 제2차대전 직후의 3분의1에서 80년대에는 5분의1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증요한 점은 미국의 총생산이 세계 전체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23%수준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이제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네 가지 주요지정학적 제 문제에 부닥치고있다.
첫째는 소련의 쇠퇴가 국제적 폭력으로 파급되지 않도록 확실히 예방하는 것이고, 둘째는 일본의 세력부상을 평화적이고 제도적인 채널로 유도하는 것이다. 셋째는 현재 진행중인 유럽통합을 유럽대륙의 안정증진의 도구가 되도록 고무하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세력확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 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특히 마지막 문제는 부분적 예이기는 하지만 페르시아만 사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라크 군이 쿠웨이트를 침공하면서 미소 양 강대국이 쇠퇴하고 있다는 신화도, 경제적 강대국이 새 국제질서 속에서 군사강대국의 위치를 대체 할 것이라는 주장도 모두 무색하게 됐다.
군사력은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이 세계석유매장량의 4분의1을 지닌 세계경제의 요충을 통제하지 못하도록 억제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것임을 증명했다.
페르시아만 사태는 또한 새로운 강대국으로 지칭되는 독일·일본이 1차원적 세력이라는 점을 폭로한 것이기도 했다.

<소프트파워 증명>
물론 군사력의 직접적 사용이 미국과 미 동맹국들에 의해 일어나리라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일지라도 미국의 능력이 예방 적힘을 의미한다는 점은 상황장악에 있어 중요한 것이다.
현재의 페르시아만 위기가 보여주듯 강대국 소련이 쇠퇴하더라도 미국으로부터 이 같은 예방 적 역할을 제거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페르시아만 사태가 가져다준 또 다른 교훈도 되새겨봄직하다.
군사력이란 문제해결의 절반기능만 갖고 있다. 이것은 쇠퇴주의자들의 주장이 잘못된 것임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증거다.
대 이라크 국제협력을 동원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군사력 그 이상의 것이다. 이 같은 성공은 또 미국이 어떤 다른 나라보다 광범위한 힘의 자원을 보유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냉전 후 세계 속 미국의 역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강한 힘(하드 파워)와 부드러운 힘(소프트 파워)의 중요성을 인식해야한다.
하드 파워는 다른 나라에 대해 명령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는 통상적으로 군사력과 경제력 등 가시 적 자원의 사용으로 나타난다.
소프트 파워는 명령보다 협력의 능력이다. 이는 한 나라가 원하는 것을 다른 나라도 함께 원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페르시아만 위기에서는 미제82공정 대를 사우디아라비아에 신속히 배치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기는 했으나 이와 동시에 유엔결의안을 통해 이라크군의 쿠웨이트침공이 국제법을 위반한 것임을 규정하고 대 이라크 제재를 요구하고 이 같은 조치를 합법화하는 제반조치도 중요했다.
이 같은 유엔결의안이 없었더라면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군의 사우디진주를 허용하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며 아랍국가들이 사우디아라비아 파병을 결정하도록 유도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미국은 하드 파워나 소프트 파워를 두루 갖추고 있기 때문에 계속 세계 최강국으로 남을 것이다.
세계최강국인 미국이 국가적 집단행동을 선도하지 못한다면 그 어느 다른나라도 이를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 본인의 주장이다.

<약력>
▲37년 미국 뉴저지주 출생 ▲58년 프린스턴 대 졸업, 영국 옥스퍼드대 수학, 68년 하버드대 정치학박사 ▲77∼79년 안보·과학·기술분야 국무성 차관보 및 핵무기확산방지 국가안보위원회 의장역임. ▲현재 애스핀 전략그룹 회장, 동서안보연구원장, 군축문제에 관한 유엔자문위원회 미국대표. ▲「대외정책과 국제안보」주 편집위원으로 다수의 저서와 논문저술. 최근 대표작은「미 권력의 성격변화」(9O년 출간)와「핵윤리」(90년 출간).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