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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속에 구멍가게 차린 듯 얼떨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어떻게 구멍가게 하나 차릴 수 없을까 하고, 입지심의하고 사업계획 검토하고 어쩌고 하다가 막상 신장개업하고 보니 어리둥절합니다. 어줍기도 하고요. 마라톤 타자기로 허겁지겁 두들겨 팔아먹은 물건을 돌아보니 문장이 엉성한 게 다리 같습니다. 앞으로 간다는 게 늘 옆 걸음만 치고 있구요. 부끄럽습니다. 그런데도 웬일로 당선될 수 있었는지 심사평을 뜯어보지 못하고 이 글을 씁니다만, 아마 시가 가내수공업인 것만이 아니라 유통업이기도 하다는 것을 꼼꼼히 셈 평한 까닭이 아닌 가도 싶습니다.
좋은 시인이려면 마키팅 전략을 가져야 한다고 익살부리던 어느 경영학사 시인의 말도 생각납니다만, 유통이란 낡은 문학용어로 흔히 체험이라고 말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생성 변화하는 전체 삶의 역동성을 포괄하고있기도 합니다. 시장처럼 오묘하고 깊은 삵의 자리가 또 어디 있습니까. 시장이 예술의 발상지이고 목적지라는 생각조차 듭니다. 문학 경론은 이 시장의 수많은 물건들을 갈 감식하고, 감식을 반성하고, 유통시키고, 피드백하면서 유통을 체계화하는 예술행위라고 단순하게 생각해봅니다만 잘 모르겠습니다. 뭐든 쉽게 잊어버리는 것이 이 구릿한 한세상 버티고 살아가는 힘이 되다보니 문학이 뭔지 조차 자꾸 잊어버립니다. 그러니 이 별것 아닌 조그만 구멍가게도 혹시 우물 속에 차린 것이나 아닌지 새퉁스러워 보이구요. 누가 우물 속으로 물통을 내려주면 바닥에서 물 한 바가지 긁어 담아주는 노릇이 아닌, 능동적인 밀고 당김의 유통전략을 구사할 자신이 서지 않습니다만, 아무튼 동업자끼리 술잔 주고받듯 또는 자작하듯 하는 시와 평론에도 손님 좀 다양하게 끓었으면 싶습니다.
이 사사로운 자리를 빌려 신장개업을 이끌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부모님과 아내와 예술가들, 또 모든 시장 사람들의 새해 건강을 빌며 특히 박석씨의 빠른 쾌유를 기원합니다. 글론 현실의 오묘함과 비릿함도 안녕 하기를.
◇약력▲58년 전남목포출생 ▲덕수상고 졸업 ▲방송통신대 영어과 재학
당선작품『죽음을 극복하는 두길-생성의 관점에서 본 오규원과 정현종의 시』는 근간「문예중앙』봄호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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