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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1% 외국인 시대] 上. 숙련공 빠진 업체들 "문 닫을 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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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4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 외국인 노동자 거주지역. 평소 각국의 언어가 어우러져 시끌벅적한 거리가 한산하다 못해 썰렁하다. 10여곳의 부동산업소 유리창엔 '빈방 있음'이란 전단이 수십장씩 붙어있다.

N부동산 李모 사장은 "외환위기 때도 빈방이 나오면 금방 임자가 나타났는데, 요즘은 보러 오는 사람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월세로 살던 외국인들이 지난 주말부터 '따뜻해지면 돌아오겠다'면서 떠나고 있다"고 전했다.

외국인 노동자 밀집지역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시화공단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일하는 인도네시아 출신 알리(27.입국 5년차)는 다음 주말 모처로 숨을 예정이다. 그는 "본국에 입원 중인 어머니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귀국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친구들이 잡아놓은 집에서 방문을 잠그고 TV만 보며 당분간 버티겠다"고 말했다.

지난달까지 경기 남양주 성생공단 가구공장에서 일하던 방글라데시인 레벤(30)은 지난주 수원지역으로 이사했다. 그는 "이곳이 단속 0순위라는 소문에 불안해서 방을 옮겼다"고 말했다. 성생공단은 외국인 노동자 1천3백여명 중 70% 이상이 강제출국 대상인 4년 이상 체류자들이다.

◇불법 체류자 버티기=정부는 1992년 이래 16차례나 불법 체류자 집중단속을 예고했다가 "외국인이 없으면 공장 문 닫는다"는 현실론에 밀려 포기했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고 불법 체류자들은 믿는다. 4년 이상 체류자들인 이들은 대부분 공장에서 리더 역할을 하는 숙련공들이다.

한꺼번에 빠져나가면 해당 업체들은 조업중단에 몰릴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당사자들보다 업체에서 앞장서 불법 체류를 조장하기도 한다.

안산 반월공단에서 철문 제작 공장을 운영하는 姜모(52)씨는 "이란인 직원 5명을 잠시 숨어있다가 오라고 지방에 내려보냈다"고 말했다. 그는 "당분간 제작량을 줄이며 버티겠다"며 "이들이 없으면 아예 문닫을 판"이라고 말했다. 우리 경제구조에서 외국인 숙련공은 이미 대체하기 힘든 필수 요원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이 상당수 고용주의 시각이다.

일단 본국으로 돌아갔다가 재입국해야 하는 입국 3~4년차들도 난처한 처지다.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양혜우 소장은 "일단 돌아가면 한국 내 불법 체류 경력 때문에 자국에서 재출국이 어려운 데다 다시 브로커에게 돈을 줘야 하기 때문에 체류확인 신청을 포기한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외국인 노동자 단체들은 "10만명이 넘는 불법 체류자를 한꺼번에 모두 추방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전면적인 '사면'까지 요구하고 있다.

◇정부 "이번엔 달라"=정부는 외국인 노동자의 체류 기간(현재 5년)을 더 늘리면 이들의 국내 정주화(定住化) 현상이 생겨 더 큰 문제가 생긴다는 판단이다.

정부는 예고한 대로 16일부터 출입국관리소 주관 하에 법무부.노동부.경찰청의 대대적인 합동 단속을 벌일 계획이다. 사법당국 관계자는 "전국적으로 4~5명씩 50여개 단속반을 편성, 외국인 밀집지역을 집중 감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도 물러서면 고용허가제는 시행하기도 전에 누더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민도 있다. 적발한 불법 체류자의 수용 능력이 내년 초까지 1천여명선에 그칠 것으로 보여 단속대상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는 최소 3천~4천명 정도는 수용할 수 있어야 효과적인 단속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또 불법 체류자들이 장기간 직장 없이 은거할 경우 범죄의 유혹에 빠질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

김필규.고란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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