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보에도 "대응없다"...유명무실해진 檢 '형사사건 공보 규정' [현장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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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7년 5월 8일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일 당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진행된 제19대 대통령 선거 마지막 유세에서 딸 문다혜씨와 손자로부터 카네이션을 선물받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7년 5월 8일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일 당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진행된 제19대 대통령 선거 마지막 유세에서 딸 문다혜씨와 손자로부터 카네이션을 선물받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오보 명백한데도 "대응 없다"는 검찰  

"전 사위 가족과 관련해서는 해외 이주 경위와 금융 거래 관련 조사가 필요해 출석을 요구했으나 불응했다. 이에 2회에 걸쳐 출장 조사를 요청했는데 1회째는 만나지조차 못했고, 2회째는 조사 자체를 일체 거부해 참고인 조사가 성사되지 못했을 뿐, 검사 등이 손님을 가장해 목욕했다거나 그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는 허위 주장입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 전 사위 서모(44)씨의 타이이스타젯 특혜 채용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전주지검이 지난 12일 낸 성명이다. 이날 윤건영·진성준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친문계 당선인 27명이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이 피의자도 아닌 참고인 가족까지 공포감을 느끼게 하는 불법적 수사를 하고 있다"며 "특히 담당 검사가 문 전 대통령 전 사위 모친에게 지속적인 괴롭힘을 자행하고 있다"고 반발하자 반격에 나섰다.

민주당 당선인들은 또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일 때 대검 대변인을 맡아 '윤 총장의 입'으로 통하던 이창수 전주지검장이 취임한 뒤 수사가 급진전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배후에 대통령실이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폈다. 대통령과 지검 수장 이름이 거론돼서였을까. 기자회견 날이 일요일이었는데도 전주지검 대응은 빨랐고, 성명 내용도 상세했다.

지난해 12월 21일 당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이임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2월 21일 당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이임사를 하고 있다. 뉴스1

한동훈 장관 때 공보 규정 손질 

법무부는 한동훈 장관 때인 2022년 7월 25일부터 기존 공보 규정을 손질한 '형사사건의 공보에 관한 규정(법무부 훈령)'을 시행하고 있다. ▶수사 책임자 직접 공보 허용 ▶서면 자료 외 구두 설명 등 공보 방식 다양화가 골자다. 2019년 12월 1일 자녀 입시 비리 등으로 수사받던 당시 조국 법무부 장관(조국혁신당 대표)이 폐지한 검찰 티타임도 부활했다. 티타임이란 검찰 중간 간부급인 차장검사가 기자들과 만나 묻고 답하는 '비공개 정례 브리핑'을 말한다.

법무부는 "기존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은 공보 요건과 방식이 지나치게 제한적이어서 국민의 알 권리 보장에 미흡하고, 오보 대응 미비로 수사에 대한 불신이 가중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는 점을 개정 이유로 댔다. 새 공보 규정엔 공소 제기(기소) 전이라도 추측성 보도나 오보 가능성이 있으면 예외적으로 사건 정보를 알릴 수 있는 길을 열어놨다.

그러나 이후에도 "검찰이 선택적으로 공보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전주지검이 수사 중인 문 전 대통령 관련 사건이 대표적이다. 2018년 3월 이스타항공 창업주인 이상직 전 국회의원이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중진공) 이사장에 임명되고 각종 특혜를 받은 대가로 항공업 경력이 전무한 서씨를 같은 해 7월 본인이 실소유주인 타이이스타젯 전무로 부정 채용한 뒤 급여(월 800만원)와 가족 주거비 등을 지급했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문 전 대통령은 뇌물수수 혐의로 입건됐다.

이창수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이 지난 16일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창수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이 지난 16일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 유불리 상관없이 공보해야"  

검찰은 2018~2020년 문 전 대통령 딸 다혜씨가 태국에 머물 때 최소 3명 이상의 청와대 직원과 금전 거래를 한 정황을 포착, 자금 성격 등을 조사 중이다. 하지만 관련 보도는 제각각이다. 한 일간지는 다혜씨가 현지에서 청와대 경호처 직원에게 수천만원을 줬다고 했다. 반면 다른 매체는 '해당 직원이 다혜씨에게 돈을 건넸다'고 했다. 둘 중 하나는 명백히 오보인데도 검찰은 "수사 중이어서 확인해 줄 수 없다"며 "오보 대응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에 법조계 한 인사는 "검찰이 형법상 피의사실공표죄 등을 비껴가면서도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큰 인사'는 보호하되 여론전에서 우위를 점할 만한 정보만 흘린다"고 했다.

'수사 외압' '보복성 수사' '봐주기 수사' 등 논란이 있을 때마다 검찰은 "모든 사건은 정치적 유불리에 상관없이 증거와 법리에 따라 처리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수사 주체와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는 것 같다. 여기에다 형사사건 공보 규정마저 고무줄처럼 적용한다면 수사에 대한 신뢰성에 의심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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