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도 끓는 쇳물 내게 맡겨…제철소 ‘숨은 일꾼’ AI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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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중후장대 산업 파고든 AI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월 한 대담에서 “올해는 모든 산업에서 인공지능(AI)이 활용되는 원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자동차·철강·조선·화학 등 중후장대 (重厚長大) 산업 현장에 AI가 도입되면서 관련 시장도 성장하고 있다.

지난 16일 경북 포항시 포스코 포항제철소 제4연주공장. ‘제철소의 심장’ 용광로에서 나온 펄펄 끓는 쇳물이 컨베이어 벨트 위 새빨간 슬라브(쇳물이 굳어 만들어진 철강재 덩어리)가 되어 끊임없이 밀려 내려왔다. 섭씨 수백 도 뜨거운 바람을 견디며 카메라 두 대가 쉴 새 없이 작업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4연주공장은 2021년, 기다란 상자 모양 슬라브가 정상 각도를 벗어나 움직일 때마다 경고를 보내는 AI를 도입했다. 포스코는 AI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본격적으로 성과를 내고 있다며 현장을 처음 공개했다. 박중해 포스코 생산기술부 과장은 “무게 30톤(t)의 슬라브 한 덩어리 평균온도는 섭씨 1000도 이상”이라며 “조금만 각도가 틀어져 내려와도 슬라브가 라인에 부딪혀 자칫 연주공장 전체가 멈출 수 있다”고 말했다.

학습을 끝낸 AI가 전송된 카메라 화면을 시시각각 분석해 슬라브 각도가 틀어졌다고 판단하면 라인을 멈추고 작업자에게 알린다. 통상 주행 각도가 2도 넘게 어긋나면 위험 상황으로 판단한다. AI 학습에는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칩이 사용됐다.

회사에 따르면 시스템 도입 후 지금까지 한 건의 사고도 발생하지 않았다. 현장 직원 만족도도 높다. 단순 감시 업무를 AI가 대신해주기 때문이다. 포스코DX 관계자는 “무엇보다 AI에 대한 현장의 신뢰가 중요하다”며 “처음에는 AI가 경고만 할 수 있었지만 작업자의 신뢰가 쌓이면서 자체적으로 라인을 멈출 수 있는 권한까지 부여했다”고 말했다.

섭씨 1400도 이상의 펄펄 끓는 쇳물을 나르는 기관차에도 AI가 붙는다. 포항제철소 내부에는 용광로에서 제강공장까지 쇳물을 운반하는 기관차 30대가 24시간 오간다. 드넓은 제철소 부지에 건널목만 무려 55곳이다. 기관차 속도는 시속 10㎞ 수준이지만 1000t이 넘는 무게 탓에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해도 제동거리가 100m에 달한다. 이런 이유로 갑자기 사람이나 차량이 시야에 나타났을 때 기차를 곧바로 세우기 힘들어 안전사고 위험이 높았다. 지난 3월 포항제철소는 각 건널목 CCTV 화면과 연동한 AI에 사람·차량의 모양을 학습시켰다. 차단기를 넘어 사람·차량이 들어오면 운행 중인 기관사에게 무전으로 경고가 전달된다.

포스코뿐 아니다. 기업들은 수십 톤의 자재를 운반하는 크레인에 AI 기능을 적용하거나 산업용 로봇으로 물류를 분류해 옮기는 등 위험한 현장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AI를 활용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마켓앤마켓은 글로벌 AI 시장이 2030년까지 1조3400억 달러(약 1800조원)까지 커질 것이라 전망하면서 자율주행과 보안·안전 등 산업 현장에 직접 도입할 수 있는 AI 분야가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윤일용 포스코DX AI센터장은 “지금까지 서비스형 AI 기술에 관심이 집중됐지만 최근 산업 구조가 고도화하면서 산업용 AI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특히 철강·기계·조선 등 중공업 현장을 잘 아는 AI 전문가를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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