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의·정 갈등 3개월…환자들은 속이 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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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의사들이 낸 집행정지 기각, 정부도 번복 힘들어

이젠 출구 대책 찾아야…시스템 붕괴는 정부 실패

지난 2월 19일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하며 본격화한 의·정 갈등이 석 달을 넘겼다. 이런 가운데 의료계가 의대 정원 확대를 중단해 달라며 낸 집행정지 신청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사태 해결의 실마리가 되길 국민 대다수가 고대했다. 그러나 법원이 지난주 신청을 기각하자 의사들은 오히려 더 강경한 태도를 보여 환자들의 속은 타들어 간다.

법원의 결정 취지는 의대 정원 확대로 의대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받을 여지가 없지 않지만, 정책을 중지시키면 의료개혁이라는 공공복리를 해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정부가 의사 인력 증원에 관해 의사들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거나 “정부 정책에 반대하기 위한 의사 파업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원칙론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에 대해 대한의사협회 등은 “정부의 의대 증원은 앞으로 공공복리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상황을 초래할 것”이라며 법원을 규탄했다. 특히 임현택 의협 회장은 라디오 방송에서 담당 부장판사를 겨냥해 “대법관에 대한 승진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한다”는 말까지 했다. 심각한 명예훼손이다. 유일한 의사 법정 단체의 수장이 내놓는 근거 없고 거친 언사는 의사들 주장의 신뢰성만 깎아내릴 뿐이다. 다른 의사단체들도 강경 일색이어서 걱정스럽긴 마찬가지다. 전국의대교수 비상대책위는 23일 총회를 열고 1주일 휴진 등 대응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전공의와 의대생들도 의대 정원 확대 백지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상 복귀는 없다는 입장이다.

5월 말까지 대입 정원을 발표해야 하는 상황에서 법적 판단을 받아보자며 집행정지 신청을 낸 것은 의사들이다. 법원의 결정이 나온 이상 정부가 이를 뒤집을 방도는 사라졌다. 이마저 무시하라는 것은 정부에 노골적으로 직권남용을 요구하는 것이다. 나라 전체가 의사들 뜻대로만 움직일 수는 없지 않은가.

의사들은 집단행동을 하며 국가 의료시스템 붕괴를 염려하기 때문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런데 지금 보이는 모습은 코앞에 닥친 시스템 붕괴를 무기 삼아 정부와 국민을 협박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자신들 주장대로 전공의가 복귀하지 않으면 1년간 전문의 배출이 정지된다. 의대생들은 6년간 두 학년이 한꺼번에 수업을 듣는 파행이 불가피하다. 정말 의료시스템 붕괴가 염려스럽다면 일단 복귀해야 한다. 그리고 법원이 지적한 대로 정부와 협의를 거쳐 합당한 증원 규모를 찾아야 한다.

정부도 한고비를 넘겼다고 안심할 때가 아니다. 오히려 재판부가 결정문을 통해 증원 규모 결정 과정이 과학적이지 않았다는 점을 명시한 대목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무엇보다 출구 대책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 의사들 복귀가 미뤄져 환자들의 희생이 커진다면 이야말로 정부의 실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