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북 비핵화 실패를 동맹 탓으로 돌린 전직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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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2019년 6월 30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판문점 남측 지역에서 만난 모습. 북핵 담판에 실패한 '하노이 노딜' 이후 4개월 만이었다.[노동신문=뉴시스]

2019년 6월 30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판문점 남측 지역에서 만난 모습. 북핵 담판에 실패한 '하노이 노딜' 이후 4개월 만이었다.[노동신문=뉴시스]

문 전 대통령, 외교·안보 회고록서 납득 어려운 인식

“유엔 대북 제재 때문에 애로” 주장…외교적 부담 우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임 중에 추진한 외교안보 정책 관련 소회와 비화를 담은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가 출간되자 정치권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실패한 비핵화와 굴욕적 대북 저자세에 대한 자성은 보이지 않고, 자기 합리화와 공감하지 못할 주장으로 가득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비핵화 실패 책임을 미국 측에 떠넘기는 듯한 부분은 자칫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한·미 동맹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제기된다.

655쪽 분량의 회고록에서 문 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남북 정상회담 및 두 차례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중재자 역할을 자신의 성과로 자평했다. 하지만 북·미 정상회담에서 핵 담판은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났고, 결과적으로 이런 정상회담이 북한의 핵 무력 고도화에 시간만 벌어줬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김 위원장은 2018년 3월 문 전 대통령이 보낸 대북 특사단에게 ‘비핵화 의지’를 표했고, 당시 정부는 충분한 입증이나 여과 없이 이를 미국에 전달했다. 회고록에서 문 전 대통령은 그해 4월 판문점 남북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핵을 사용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고 강조했다. 아직도 김 위원장의 ‘비핵화 공수표’를 순진하게 믿고 있는지 되묻고 싶다.

문 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성사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무리수를 둔 정황도 회고록에서 포착됐다.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첫 북·미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당시 청와대는 ‘한국이 빠진 상태에서 미국과 북한끼리라도 종전선언을 해도 좋겠다’는 메시지를 미국에 보냈다는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은 2019년 ‘하노이 노딜’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의 협상팀은 북한의 제안 내용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며 핵 담판 실패의 책임을 미국에 떠넘기는 듯한 입장을 취했다. 반면에 트럼프 행정부 국무부 대변인을 지낸 모건 오테이거스는 최근 미국우선주의연구소(AFPI) 정책 자료집에서 “문 전 대통령이 북한에 더 많은 양보를 하려 해 미국은 문 전 대통령을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의도적으로 배제했다”고 엇갈리는 증언을 했다.

더욱 어이없는 것은 ‘유엔 안보리 제재가 (남북 관계 개선) 국면마다 애로로 작용했다’는 주장이다. 한국의 전직 대통령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저지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대해 불만을 표시한 것이다. 공감하기 힘든 대목이다. 문 전 대통령은 퇴임 전 “임기가 끝나면 잊힌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전직 대통령의 무게를 고려하면 좀 더 신중한 언행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