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극단적 팬덤 정치 경고장’ 거스르는 이재명 대표 행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와 추미애 당선인이 지난 1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제22대 전반기 국회의장단 후보 선출 당선자 총회에 참석해 국회의장 후보로 선출된 우원식 의원의 발언을 듣고 있다. 김성룡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와 추미애 당선인이 지난 1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제22대 전반기 국회의장단 후보 선출 당선자 총회에 참석해 국회의장 후보로 선출된 우원식 의원의 발언을 듣고 있다. 김성룡 기자

‘추미애 패배’ 개딸 반발에 이재명 “당원 권한 두 배”

강성 팬덤 결별하지 못하면 중도층 민심 확장 요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명심(明心)’을 등에 업고 국회의장 후보 경선(16일)에 나섰던 추미애 당선인이 우원식 의원에게 패한 이변이 연출된 이후 ‘당원권 강화’ 주장을 연일 펼치고 있다. 이는 경선 과정에서 확인된 ‘이재명 일극체제, 강성 팬덤 정치’에 대한 경고음과는 거꾸로 가는 행보로 비친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이 대표는 그제 대전 당원 행사에서 “최근 당에 섭섭하고, 아프고, 그런 사연도 꽤 있다”며 “당원도 두 배로 늘리고, 그 권한도 두 배로 늘리겠다”고 공언했다. “(당을) 혼내기 위해 탈당하겠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탈당 대신) 당비를 끊으라”고도 했다. 의장 경선 결과에 반발해 강성 지지층인 개딸을 중심으로 탈당 신청이 1만여 건에 달하자 진화에 나선 것이다. 전날 광주 행사에 이어 어제 최고위 회의에선 시·도당 위원장을 뽑을 때 권리당원의 뜻을 더 반영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뜻도 언급했다. 친명계 김민석 의원은 “국회의장 후보, 원내대표, 당 지도부 경선 때 권리당원 의견 10% 이상 반영을 원칙으로 하는 10% 룰을 제안한다”고 맞장구를 쳤다.

개딸들은 경선 과정에서 자신들 입맛에 맞는 추 당선인을 의장 후보로 낙점하고 문자폭탄과 추대 서명운동 등으로 당을 압박했다. 이 대표 측이 조정식·정성호 의원 등 다른 경쟁 후보를 주저앉히는 방식으로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얘기도 파다했다. “의장은 중립 기어를 넣으면 안 된다”는 중립 거부 발언으로 강성 지지층의 기대에 부응한 추 당선인은 “당심이 반영되는 국회의장을 뽑아야 된다”는 주장까지 내놨다. 그러다 의외의 결과가 나오자 강성 당원들은 투표 명단 공개까지 요구하며 반발했다. “조국혁신당으로 이사간다”는 탈당 선언도 줄을 이었다.

당원과 시민의 정치 참여 확대는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다. 그러나 일부 극단적 팬덤이 국회의장직을 비롯해 주요 인사나 정책을 쥐락펴락하려 하거나, 완력이 통하지 않았다고 해서 집단탈당으로 분풀이하는 행태는 도를 넘어도 한참 넘은 것이다. 당원권 강화는 오히려 이들에게 판을 더 깔아 주는 결과로 이어질 게 자명하다. 소수 팬덤에 당이 휘청이는 비정상적 상황이 심화할 수밖에 없다. 정당의 정체성뿐 아니라 대의민주주의 질서까지 위협하는 게 이 같은 극성 정치 팬덤이다.

의장 경선 결과는 이런 강성 팬덤 정치와 절연하라는 당내 당선인들의 분명한 신호이자 민심의 뜻이다. 이 대표가 이 같은 엄중한 메시지를 거슬러 팬덤 눈치 보기에 급급하거나 내심 대선 행보에까지 이용하려만 든다면 중도층 민심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오히려 부메랑이 돼 이 대표와 민주당에 역풍으로 돌아갈 수도 있음을 깨닫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