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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기억] ‘어부바’라는 물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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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9호 31면

‘어부바’, 2013년 ⓒ 노순택

‘어부바’, 2013년 ⓒ 노순택

부모가 아이를 업고 있는 이미지 하면 화가 박수근의 그림 ‘나무와 여인’이 떠오른다. 사진 쪽에서 찾자면 펄펄 눈 내리는 초가 앞에서 아이를 포대기에 업고 선, 사진가 강운구의 ‘수분리’ 여인을 들 수 있겠다. 둘 다 눈물겨운 풍경이다.

박수근이 그린 1960년대, 강운구가 찍은 1970년대에 그랬듯이, 사람들은 여전히 아이들을 업는다. ‘어부바’ 한다. 그런데 이 어부바는, 정말로 아름답고 서정적인 풍경이기만 한 걸까?

이 사진을 찍은 사진가는 딸아이를 낳자, 아이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면서 기록해보고 싶은 아버지로서의 순수한 욕구가 일었다고 고백한다. 그런 그의 눈에 문득, 어부바가 들어왔다.

2013년 경기도 고양에서 엄마가 포대기로 아기를 업은 채 경사진 산길을 오르고 있다. 2010년 서울 세종로의 한 집회 현장에서는 엄마가 아들을 업고 섰고, 을지로에서는 아빠가 아들을 업고 걷고 있다. 사진들 안에서 부모들은 한결같이 아이를 업고 있거나 목에 지고 있다. 어부바 하고 있다.

조금 과장하자면, 역시 눈물겨운 풍경이다. 하지만 이 눈물겨움은 60~70년대 그림과 사진 속의 그것과는 어딘지 다르다. 부자연스럽고 우스꽝스러운, 사진 속 그로테스크를 깨닫는 순간 촉발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유난히도 자녀 교육을 강조해 온 한국 사회는, 사실상 아이들이 전권을 쥔 사회라는 게 작가의 시선이었다. 자녀를 향한 헌신과 뜨거운 교육열이 경제 성장을 가능케 한 동력이 되어주었지만, 동시에 부조리의 원인도 제공한 것이다. 작가 자신의 가정에서, 이웃들과 주변 친구들에게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어부바는, 곧 그런 우리 사회의 한 상징이었다.

늦둥이 딸아이의 귀여운 성장 과정을 기록코자 했던 아버지는 결국 2010년대 자녀 양육의 현실을 사진으로 남겼다. 그것은 그가, 늘 자신이 발 딛고 있는 사회 풍경을 예각으로 바라보며, 역설과 풍자로 질문을 던져 온 사진가 노순택인 때문이다.

2024년 오늘, 어부바의 문제의식은 달라진 게 없지만 흔했던 그 풍경은 어느덧 보기 드문 시대풍경이 되었다. 가정의 달 5월에 다시 톺아보는 ‘어부바’다.

박미경 류가헌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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