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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살면 어떡해"…10억 모은 남자가 걱정하는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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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 리스크’에 대비하는 투자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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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UN)은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를 넘어서면 초고령 사회로 분류한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2022~2072년)에 따르면 한국은 내년이면 초고령 사회가 된다. 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36년 30%, 2050년 40%로 늘어나게 된다. 2072년에는 전체 인구의 절반 가까운 47.7%(1727만 명)가 고령이다. 게다가 기대수명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장수 리스크’를 대비하려면 얼마만큼의 은퇴자금을 모아야 할까.

2022년에는 생산연령 인구 100명이 노인 24.4명만 부양하면 됐는데, 2072년에는 노인 104.2명을 부양해야 한다. 국가의 재정 등 많은 부문에 빨간불이 켜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에 변수가 하나 더 있다. 인간의 수명 연장 가능성이다. 데이비드 싱클레어 미국 하버드대 의대 교수는 『노화의 종말』에서 “우리가 반드시 늙어야 한다는 생물학적 법칙 같은 건 없다. 건강한 수명 연장은 곧 이루어진다”고 단언했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인구구조 변화는 자산시장에 큰 영향을 준다. 대표적인 게 주식시장이다. 노년이 되면 일반적으로 주식 등 위험자산에 대한 선호가 줄어든다. 국민연금 역시 연금을 지급하기 위해 보유했던 주식을 팔아야 한다.

김세완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와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은 통계청의 장래 인구추계를 토대로 코스피 시가총액이 2070년까지 어떻게 변할지 추산했다. 결과는 충격적이다. 코스피 시총 규모는 2035년 1948조3000억원을 기록한 뒤 매년 줄어 2060년 1329조2000억원, 2070년 618조2000억원으로 줄어든다. 이는 지금(4월12일) 시총(2189조원) 규모의 3분의 1 수준이다.

김 교수는 “금융시장 참여자는 인구구조 변화에 미리 반응하는 만큼 고액자산가를 중심으로 2020년대 말이나 30년대 초반에 미국 주식 등으로 자산을 대거 이동하는 등 포트폴리오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한국 자산시장은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붕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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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암울한 전망만 있는 건 아니다.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는 “베이비붐 세대가 축적한 자산이 많고, 인공지능(AI) 도입과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로 기업들의 비용 구조가 개선되는 만큼 주식시장이 나쁠 이유는 없다”며 “다만 10년 후 내수 기업들은 점점 기반을 잃고, 수출 중심의 대기업만 좋아지는 양극화가 극심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인간의 수명은 생각보다 더 빠르게 늘어날지 모른다. 이른바 ‘초장수 사회’의 도래 가능성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지난해 9월 ‘120세까지 살기’라는 표지 기사에서 “최근의 생명 연장을 위한 노력으로 100세까지 사는 것이 표준이 될 수 있으며, 120세까지 사는 것도 합리적인 목표가 될 수 있다”며 “더욱 흥미로운 건 수명이 건강하게 연장된다는 것”이라고 썼다. 장수의학자인 박상철 전남대 연구석좌 교수는 “로봇 장기와 유전자 조작 기술 등이 본격화하면 인간의 수명, 죽음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어질 수도 있다”며 “이런 기술들이 사람들에게 적용되려면 30~40년은 걸릴 텐데 2050년이 인간 수명 연장의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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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오래 살면 많은 게 변해야 한다. 국민연금만 하더라도 사람들이 더 오래 살면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아진다. 출산율이 가파르게 떨어지며 향후 가입자가 줄어들 게 뻔한데 기대수명이 늘어날 경우, 연금수급 기간이 길어져 내줘야 할 연금은 늘어나게 된다. 한국보험계리사협회도 지난해 11월 보고서를 통해 “통계청의 생명표가 설정한 최장 연령은 100세로, 기대수명 연장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최장 연령을) 120세로 연장해 사망률을 추정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국민연금 100세 이상 수급자는 2011년 18명에서 2023년 174명으로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길어진 수명은 개인의 노후 준비에도 타격을 준다. 현재는 대부분 80~90세 사망에 맞춰 노후 준비를 하고 있는데 수명이 길어지면 자산 고갈 등 위험에 처하게 된다.

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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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증권의 도움을 받아 예상 수명이 80세, 100세, 120세, 150세로 늘어날 때마다 필요한 노후자금이 얼마나 늘어나는지를 추산해 봤다. 현재 40세인 A씨가 은퇴 시점인 60세까지는 5%로 자금을 불리다 이후에는 4%의 수익을 내는 것으로 가정했다. 예상 물가상승률은 2% 수준이다. 은퇴 전 계산의 편의를 위해 국민연금 등은 별도로 계산하지 않았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은퇴 후 배우자와 함께 지내는 데 필요한 최소 생활비는 월 231만원이다. 이 금액을 계속 지출한다고 가정했다. 만약 80세까지 산다면, A씨가 은퇴 전까지 4억8630만원을 모으면 국민연금을 전혀 받지 않더라도 노후자금 고갈 우려 없이 생활할 수 있다. 하지만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필요한 생활비는 100세 9억5310만원, 120세 14억2352만원, 150세 21억3595만원으로 가파르게 증가한다. 국민연금을 매달 100만원씩 받아도 필요 자금은 80세 3억8844만원에서 100세 7억3207만원, 120세 10억7836만원, 150세 16억280만원으로 늘어나게 된다.

10억원 목돈을 쥐고 은퇴한 60세 ‘금지팡이’ 노인이라도 씀씀이를 줄여야 한다. 10억원 목돈을 연 4%로 운용할 경우 수명이 80세일 때는 월 503만원씩을 죽을 때까지 쓸 수 있다. 그런데 수명 연장을 예상할 경우 월 지출을 100세 월 300만원, 120세 235만원, 150세 196만원으로 줄여야 한다. 민주영 신영증권 이사는 “연금 상담을 해보면 많은 사람이 자신의 수명을 실제로 살 수 있는 수명보다 짧게 예측해 노후 재무설계를 한다”며 “기대수명이 연장될 경우 계획보다 오래 사는 ‘장수 리스크’와 이에 대응하려고 소비를 극단적으로 줄여 궁핍하게 사는 ‘과소 소비 리스크’ 양쪽에 노출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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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어진 수명에 개인이 대처하는 방법은 없을까.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은 “현재 만 60세 이상은 이미 노후 준비를 위한 패(자금 규모나 소득원 등)가 완성된 만큼, 리스크가 있는 고수익 자산에 투자하라고 추천할 수는 없다”며 “결국 노동시장에 좀 더 오래 머무르며 지출을 줄이거나 평생 연금이 나오는 주택연금을 활용하는 것 외에는 사실상 뾰족한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투자수익률을 높이거나 평생 현금 흐름이 나오는 연금보험 등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민주영 이사는 “장수 리스크에 대응하는 적정한 상품이 보험사의 종신 연금 상품이지만 수익률이 낮아 물가 상승을 못 따라간다는 우려가 있을 수 있다”며 “만약 1억원이 있다면 5000만원은 즉시납 연금보험에 가입하고 나머지 5000만원은 주식 등에 분산 투자해 초과수익률을 노리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투자자산 선정에도 신중해야 한다. 홍춘욱 대표는 “고령화 시대엔 (소비가 줄어) 내수시장이 위축될 수밖에 없는 만큼 내수와 관계없는 자산에 투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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