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캐스 보우텔의 마켓 나우

벤치마킹할만한 호주의 연금개혁 모범사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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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캐스 보우텔 IFM인베스터스 이사회 의장

캐스 보우텔 IFM인베스터스 이사회 의장

‘수퍼애뉴에이션(Superannuation)’, 줄여서 ‘수퍼’로 불리는 호주 퇴직연금제도는 은퇴자의 노후자금 체계를 혁신했다. 불과 40여년 전, 호주 중산층은 은퇴 시점 보유자산이 보통 집 한 채가 전부였고, 운이 좋다면 약간의 추가자금을 마련한 정도였다. 오늘날 퇴직을 앞둔 호주인은 남성은 평균 40만 호주달러(약 3억6000만원), 여성은 30만 호주달러(약 2억7000만원)의 퇴직자금을 보유하고 있다. 이 액수는 계속 증가할 전망이다.

강력한 퇴직연금 제도는 선순환의 엔진이다. 지역사회 투자 유발을 통해서다. 호주의 수퍼 연기금들은 공항·도로·항만·에너지자산 등 기반시설에 활발히 투자한다. 수익은 다시 근로자들의 퇴직연금 자금으로 돌아가고 정부가 노후보장을 위해 공적연금에 지출해야 하는 비용이 감소한다. 이 감소분만큼 정부는 다른 사회경제적 이슈 해결에 투자할 여력을 확보할 수 있다.

마켓 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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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는 노력의 결과로 탄생했다. 처음 도입된 1990년대 초반에는 노사 간 견해 차이로 갈등이 심각했다. 노동조합들이 처음 제시한 방안은 고용주가 피고용인을 위해 임금의 일정 비율을 납입하여 산업별로 기금을 구성하는 방식이라, 기업들의 반발이 빗발쳤다. 그러나 노사는 서로의 간극을 좁히려고 대화를 계속했고, 결국 퇴직연금 제도의 개선이 장기적으로 양측에 이익이라는 점을 납득했다. 현재 호주의 퇴직연금기금 이사회들이 대부분 노사 절반씩 이사를 선임하는 것은 이러한 역사를 반영한다. 이 거버넌스 체제는 ‘동등한 대표성(equal representation)’이라고 불리며, 연금 선진국인 캐나다와 네덜란드도 채택하고 있다.

제도 정착에는 정부와 의회의 역할도 중요했다. 대부분의 호주 근로자가 퇴직연금의 혜택을 받게 한, 수퍼 제도의 시발점은 1992년 호주 연방 정부의 전 사업장 퇴직연금 납입의무 법제화였다. 또한 퇴직연금 감독당국인 호주 건전성 감독청(APRA)이 투명한 퇴직연금 운용실적 공개를 보장한 것 역시 제도 안착에 크게 기여했다. APRA는 개별 퇴직연금 기금들의 실적을 보고서로 발간하여 무료로 공개한다.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경쟁사들과 연구원들은 실적을 분석하고, 연금 가입자들은 만족할만한 성과를 달성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제도적 장치를 통해 운용실적과 노동자의 신뢰를 모두 향상시킨 점이 퇴직연금의 성공 비결이었다.

고령화와 저출생 추세로 세계 많은 나라가 연금 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한국은 그 추세가 매우 빨라 연금 개혁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알고 있다. 안정적인 노후 보장이라는 연금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한국의 여정에, 호주 사례는 참조할 만한 좋은 선례다.

캐스 보우텔 IFM인베스터스 이사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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