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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토사구팽(兎死狗烹)과 범려(范蠡)

중앙일보

입력

말을 타고 싸우던 기병(騎兵)이 전쟁이 끝나자 이번에는 그 말에게 밭을 갈게 했다. 먹이도 일도 당나귀처럼 대우했다. 다시 전쟁이 발발해 그 말을 타고 전쟁에 나섰으나 출발부터 쉽지 않았다. 과거의 날쌘 말이 굼뜬 말로 변했기 때문이었다. 이솝 우화의 한 페이지다. 전쟁이 끝난 후 군마(軍馬)에게 멍에를 씌워 중노동을 시킨 것을 사자성어와 연관시키면 뭘까.

토사구팽

토사구팽

이번 사자성어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이다. 앞의 두 글자 ‘토사’는 ‘토끼가 죽다’라는 뜻이다. ‘구팽’은 ‘개를 삶다’라는 뜻이다. 이 둘을 결합하면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삶아지는 신세가 된다’라는 의미가 성립한다. 이 사자성어의 유래를 유방과 한신(韓信)의 일화로 오해하는 이들이 가끔 있다. 월(越)나라 왕 구천(句踐)과 그의 책사 범려(范蠡)의 일화가 ‘토사구팽’의 진짜 유래다.

‘토사구팽’을 설명하려면, 먼저 ‘와신상담(臥薪嘗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구천은 ‘와신상담의 유래와도 관련이 있는 인물이다. 부차(夫差)가 ‘와신(臥薪)’했고, 구천은 ‘상담(嘗膽)’을 했다. 오월동주(吳越同舟). 이 유명한 사자성어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오나라와 월나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위아래로 영토가 인접하여 서민들도 적국 사람을 원수로 여겼다. 서로 앙숙으로 지내다가 비교적 짧은 역사만을 남긴 채 사라지고 말았다. 이 두 나라의 악연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

월나라 정벌에 나선 오나라 왕 합려(闔閭)가 화살 상처 때문에 병석에서 사망한다. 합려의 아들 부차는 아버지의 원수를 잊지 않기 위해 편안한 침대를 두고 아예 땔나무 더미 위에서 잠을 잤다. 마침내 부차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구천을 사로잡는다. 이어 구천은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오나라를 탈출해 월나라로 돌아온다. 그는 설욕을 벼르며 쓸개를 매일 혀로 핥았다. 10년을 ‘상담’하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마침내 구천이 오나라의 수도를 급습해 부차를 죽이면서 이 끊임없는 설욕전이 일단락됐다. 구천의 최종 승리에 책사 범려와 문종(文種)의 공도 지대했다.

더 이상 전쟁을 할 필요가 없게 되자 범려는 고민에 빠졌다. 이제는 국가가 아닌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위해 계책을 세워야 할 때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범려의 눈에 구천은 고생을 함께 할 수는 있어도 공(功)을 나누기는 어려운 인품의 소유자로 보였기 때문이다. ‘상담’ 일화에서 보듯 꽤 ‘독한 기질’의 보스(boss)였으리라 짐작된다. 관상학적으로 그는 ‘목이 길고 입은 까마귀의 부리처럼 생겼다(長頸烏喙)’고 전해진다.

범려는 구천의 곁을 즉시 떠나기로 결심한다. 제(齊)나라로 탈출해 그는 친구인 문종에게 편지를 한 통 보낸다. ‘새 사냥이 끝나면 좋은 활은 창고에 보관되고,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솥에서 삶아지게 된다네.’ 범려가 자신들의 신세를 사냥개에 비유하며 신속한 탈출을 권한 이 편지에서 ‘토사구팽’이 유래했다. 머뭇거리던 문종은 구천이 보낸 칼로 자결하는 최후를 맞는다. 범려는 나중에 이름을 바꾸고 상인으로 크게 성공했다.

범려의 경우는 ‘독한 기질’의 보스를 만난 경우였다. 유방이 한신 등 건국 공신들을 처형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이런저런 반란의 위험 때문이었다. 부득이한 경우가 아닌데도, 병적으로 과도하게 공신을 ‘배신하고 없애버린’ 극악한 경우도 전혀 없지 않다. 명(明)나라를 건국한 주원장(朱元璋)이 그러했다.

한 가지 우리가 오해하면 안 되는 사실이 있다. ‘모든 보스’가 ‘토사구팽’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 인류의 역사는 다른 길로 접어들었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고도의 문명사회에까지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고생만 같이하고 공을 혼자 누리는 보스가 세상을 가득 채운다면 그다음 세대의 누가 자신의 보스와 고생을 같이 할 결심을 할까.

기술이 발전한 오늘날에도 머뭇거리다가 ‘토사구팽’의 궁지에 빠지는 이들을 가끔 본다. 범려는 ‘토사구팽’의 유래가 된 문장을 남겼지만, 자신에게 닥쳐올 재난에서 한발 앞서 벗어났다. 위험을 예견하는 것과 서둘러 대응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내공이 아닐까 싶다.

홍장호 ㈜황씨홍씨 대표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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