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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태균의 역사와 비평

새로운 정치는 왜 출현하지 못하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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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2024년 총선을 돌아보며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총선이 끝났다. 선거 결과에 따른 정당과 정치인들의 행보를 살펴보고 민심을 반영한 새로운 정책을 평가하는 작업이 중요하지만, 선거가 진행될 때만큼 재미있지는 않다. 매일 보던 뉴스도 선거가 끝나고 나면 좀 시시해진다. 그럼에도 2024년 총선 결과는 이전 총선과 마찬가지로 한국 정치에서 중요한 시사점들을 주고 있다.

대한민국을 흔든 역대 선거

1980년대까지의 선거 이슈는 강력한 정부 여당에 대해 야당이 어느 정도 득표하는가에 쏠려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1956년 대선과 1958년 총선, 1971년 대선과 총선, 1978년 총선, 1985년 총선, 그리고 1987년 대선과 1988년 총선은 한국 사회 전체를 선거 열풍으로 몰아넣었다. 관권 개입 상황에서도 야당이 약진했고, 선거 결과는 한국 사회에 큰 변화의 출발점이 되었다.

역대 선거에서 야당 약진하면 한국 사회에 큰 변화 나타나기도
지난 대선과 총선, 개발시대서 벗어난 새 정치구도 출현의 기회
민주화 이후 40년 되어가지만 개도국 시절의 정치 행태는 여전
수많은 선거 치렀지만 이렇다 할 공약·정책·비전은 기억에 없어

역사와 비평

역사와 비평

대부분의 총선에서 여당의 당선자 수가 야당보다 많았지만, 때로는 야당의 득표율 약진이 예상을 뛰어넘는 경우가 있었다. 몇몇 총선의 경우 야당이 득표율에서 여당을 앞서기도 했다. 그리고 야당이 약진한 선거 직후에 정치적 변화가 나타나기도 했다. 1958년 야당의 약진은 여당 내 온건파와 야당 내 일부 그룹이 비밀리에 내각책임제 개헌을 추진하는 배경이 되었다.

1971년의 대선과 총선은 1971년 비상사태 선포와 1972년 유신선언에 원인을 제공했다. 1978년 총선은 1979년 정치적 소용돌이의 시작점이 되었고, 1985년 총선은 1987년 6월항쟁과 개헌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1988년 총선의 결과로 만들어진 여소야대의 상황은 1990년 민주자유당의 탄생과 보수·진보의 정치 구도가 탄생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변화한 시대적 상황

이번 총선은 어떤가? 1990년대까지의 총선과 대선에서는 민주화 이슈와 함께 경제개발 시대의 유산이었던 지방주의가 선거 결과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많은 전문가와 시민들이 개발독재 시대의 유산으로부터 한국 정치가 벗어나야 한다는 당위를 외쳤지만, 그 유산은 2000년대까지도 계속되었다.

어쩌면 2022년 대선과 2024년 총선이 개발독재의 정치적 유산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였는지도 모른다. 젊은 세대는 더 이상 진보의 표밭이 되지 않았다. 이는 과거와 다른 한국 사회의 정치적 지형을 보여주었고, 개발시대 이후 대도시에서 태어난 청년들이 유권자가 되면서 여촌야도(여당은 농촌, 야당은 도시)의 공식도 깨질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 제조업 중심의 근대 산업혁명에서 4차 산업혁명으로 시대적 흐름이 변하면서, 보수와 진보의 기준이 개발독재 시대의 이슈에서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혁신의 여부로 바뀔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다. 시대적 변화는 새로운 정치 구도가 출현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 아울러 민주화 이후에 태어난 세대가 이미 30대에 접어들었기에, 2024년이라는 시점에서 새로운 정치 구도가 출현한다 하더라도 오히려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70년 전 한국 정치에 대한 평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총선의 결과를 보면서 1950년대 중반 미 대사관의 한국 정치에 대한 평가가 다시금 떠오른다(1956년 2월 13일 자 전문). 이미 70여년 전의 일이다. 이 문서는 1956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돌풍을 일으키자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를 분석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전 국회의장 신익희. 중앙포토

전 국회의장 신익희. 중앙포토

당시 민주당은 1954년 사사오입 개헌 이후 1955년 창당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또한 과거의 한국민주당 계열과 함께 원내 자유당, 흥사단 계열, 가톨릭 계열 등이 민주당으로 통합된 직후였기 때문에 민주당을 그 자체로서 평가하기에는 좀 이른 시점이었다. 그럼에도 1956년 대선에서 야당 후보 신익희의 인기는 대단했다. 한강 백사장에서의 선거유세에 수십만명이 운집했다.

이러한 대중적 인기에도 불구하고 당시 미국 대사관의 문서는 민주당에 대해 그다지 호의적인 평가를 내리지 않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점은 한국 정치 자체에 대해 부정적이었다는 점이다. 이 문서에 나타난 한국 정치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외부의 시선으로 본 한국 정치의 특징

①파벌주의: 내 파가 아니면 다른 파. ②실용주의: 나와 내 가족을 위한 것인가. ③허무주의: 모든 정부와 관련된 것은 나쁘다. ④개인주의: 누구도 나에게 해 줄 것이 없다. ⑤정책보다는 개인적인 지도자들에 대한 사적인 충성심. ⑥‘거물’이 되고자 하는 희망. ⑦한국의 통일에 대한 열망. ⑧민족주의, 또는 더 정확하게 인정주의. ⑨전통적 유교 사상 잔재의 영향. ⑩서양 정치 이론의 영향.

이러한 특징으로 인하여 ①한국인들은 새로운 그룹에 표를 던지지 않으며, 빠르게 그들을 불신하게 되는 현상 ②단기적인 안전 또는 만족을 추구하기 위해 이상을 내던져 버리는 특징 ③즉각적이며 눈에 보이는 보상을 제공하지 않는 그룹들을 지지하지 않는 경향 등이 선거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하였다.

이 문서는 한국의 이러한 정치적 특징이 당시 막 독립한 국가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일 수 있으며, 아직 미국의 정치 수준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결론으로 맺음하고 있다. 이러한 평가에는 물론 오리엔탈리즘적인 생각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정치적 특징은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한국만의 특징은 아니지만

10가지 특징 중에서 통일에 대한 열망, 유교의 잔재 등은 한국 정치에서 한국 사회에서만 나타날 수 있지만, 그 외의 특징은 독립 이후 건국한 지 오래된 나라라고 하더라도 공히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일러스트=김지윤]

[일러스트=김지윤]

거물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한 파벌이 없는 나라가 어디 있는가? 실용주의, 허무주의, 개인주의는 어느 나라에서나 다 나타나고 있다. 심지어 최근 미국의 대선에서는 정책보다 실용주의와 개인주의가 한국보다도 더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는 한 국가가 어느 정도의 역사를 가졌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회가 어느 정도로 건강한 상태인가를 보여주는 문제가 아닐까?

1950년대 이후 미국에서 개발원조를 중심으로 한 반공 봉쇄정책을 추진할 때 대외정책 전문가들은 공산주의가 가진 기본적인 성격을 강조했다. 공산주의는 일종의 전염병과 같기 때문에 체질이 건강한 사회에서는 전염되지 않지만, 체질이 건강하지 않은 경우 전 사회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정치, 군사적 압박도 중요하지만, 사회 자체를 건강하게 만들어야 하며, 이를 위해 경제성장과 중산층의 형성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사회가 건강해진다면 공산주의가 확산될 수 있는 조건 자체가 사라진다. 전술한 1950년대 중반에 이루어진 한국 정치에 대한 평가는 한국이라는 조건에서의 평가라기보다는 아직 사회 자체가 건강한 상태가 아닌 개발도상국에서 나타나는 정치에 대한 평가일 수 있다.

변화하지 않는 이유는?

문제는 70여년 전의 이러한 평가의 일부가 2024년 한국 정치에 아직도 투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선거 결과뿐만 아니라 선거 전후 정치과정에서도 위의 특징 중 일부가 유사하게 계속되고 있다. 민주화 이후 40년이 다 되어가지만, 정치 행태는 개발도상국 시대의 특징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948년 이후 수많은 선거가 있었음에도 기억에 남는 공약은 1956년의 평화통일론, 1971년의 예비군 폐지, 1985년의 직선제 개헌 정도이다. 그 외에는 선거에 참여한 후보는 기억에 남지만, 선거에서 제시된 정책과 그 정책이 미래 한국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비전은 거의 기억할 수 없다.

과연 한국의 정당들은 정책을 만들고는 있는가? 시대적 변화에 필요한 새로운 정치인들을 양성하고는 있는가? 아니면 누가 더 잘못하는가에 관한 여론조사에만 치중하고 있나? 정책을 만들고 새로운 정치이슈와 프레임을 만드는 정당은 언제 출현할 수 있을까? 그 책임은 정당에 있는가, 유권자에게 있는가?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