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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준의 인사이드 아트

칼더의 모빌에 숨겨진 코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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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준 전 리움미술관 부관장·미술비평가

이준 전 리움미술관 부관장·미술비평가

꼭 20년 전 조사이긴 하지만 영국의 테이트 브리튼이 터너상에 참석한 전문가 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2004)에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으로 마르셀 뒤샹(1887~1968)의 오브제 ‘샘(변기)’이 선정된 바 있다. 예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파기하고, ‘예술의 규칙’을 바꿔 버린 뒤샹의 영향력은 한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현재 진행형이다.

어려서부터 수학적 재능을 인정받은 그는 두뇌 게임의 천재였고, 미술 세계의 기존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았다. 뒤샹은 최소한의 행위, 선택만으로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주었고, 전시조건이나 맥락에 따른 관객의 반응과 해석에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그가 남긴 파장은 아서 단토 같은 예술철학자부터, 몸을 매개로 관객과 함께 완성해가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같은 행위예술가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이다.

알렉산더 칼더와 뒤샹의 관계
아방가르드의 문화적 진화방식
입장들 사이의 힘겨루기 공간
모빌 조각의 사회학적 상상력

알렉산더 칼더, The Star, 1960년, ⓒAlexander Calder. [사진 위키아트]

알렉산더 칼더, The Star, 1960년, ⓒAlexander Calder. [사진 위키아트]

21세기에도 여전히 미술관이나 미술시장에서 인기 있는 알렉산더 칼더(1898~1976·사진)의 작품을 볼 때 뒤샹과의 관계를 종종 떠올리게 된다. 칼더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스타일로 현대의 조각 개념을 바꾼 작가다. 미술가 집안에서 태어나 기계 공학을 전공하고 피트 몬드리안, 호안 미로, 장 아르프 등과의 교류는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뒤샹과의 관계는 대부분 비중 있게 다루어지고 있지 않다. 주로 몬드리안의 영향이나, 움직이는 조각에 뒤샹이 ‘모빌’이라는 명칭을 붙여주었다는 사실이 강조되곤 한다.

폰투스 홀텐은 움직이는 조각의 역사에서 칼더의 위상은 잘 확립되었지만 뒤샹은 그렇지 못했다고 말한다. 1916~18년 뒤샹의 작업실 사진을 보면 천정과 벽면에 투명한 와이어를 이용하여 다양한 오브제를 설치한 작품들이 있다. 특히 ‘모자걸이(Hat Rack)’의 경우 매달린 사물의 형태가 시점이나 움직임에 따라 각각 다르게 보인다. 칼더의 움직이는 조각의 원리와 매우 유사하다.

뒤샹은 칼더 이전에 착시 현상을 다룬 옵티컬 작품과 움직이는 키네틱 작품을 수차례 발표한 작가였고, 시간과 공간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전시연출에서 관객의 역할과 상호작용을 중요시하였다. 물론 칼더 역시 공학도로서 물리학에 관심을 갖고 부피와 밀도, 중력 등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연구하였다. 이러한 관심이 뒤샹, 모홀리 나기, 피카비아 등과 함께 예술과 과학의 교차점을 탐구했던 ‘차원주의 선언(1936)’의 동참과 지지로 나타났다.

‘움직이는 조각’ 모빌의 창안은 결국 칼더의  예술적, 공학적인 호기심과 시대를 앞선 뒤샹의 전환적 사고, 나아가서는 아인슈타인 시대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인식과 예술가들의 변화하는 미의식(입체주의, 미래주의, 구축주의 등)을 포괄하고 있는 것이다.

전위적인 작가들의 공생관계는 아방가르드가 어떻게 진화하는지 잘 보여준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새롭게 시작된 진화가 이미 낡은 유형이 된 진화를 답보할 이유는 없다”라고 말한다. 생물학적 유기체가 번식 성공을 높이기 위해 환경에 적응하는 것처럼 아방가르드 예술은 문화적 맥락에 적응하면서, 서로가 경쟁하고 협력하면서 지배력을 유지하려고 한다.

칼더가 영향받은 동시대의 추상미술, 초현실주의, 다다이즘은 도킨스의 방식으로는 ‘밈(meme)의 문화적 현상’이었다. 새로움과 혁신으로 진화에 성공한 아방가르드는 다양한 변이, 적자생존, 자연선택의 과정을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문화적 관습과 예술적 표현이 어떻게 변화하고 생존하는지를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인정 투쟁’의 관점으로 해석했다. 그가 사회구조의 장(場)과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칼더의 모빌을 인용한 것은 그래서 흥미롭다.

가느다란 와이어에 매달린 모빌은 크고 작은 형상의 금속판들이 바람과 같은 외부 조건에 따라 다양하게 움직인다. 시간과 공간에 따라 변화하며, 선과 형태, 색채의 조화로운 구성은 매우 아름답고 심미적이다. 그러나 부르디외는 이를 사회공간의 상호작용, 역학관계로 본다. 그에게 사회는 개인이나 집단들의 무질서한 집합체나, 계급들의 위계화된 피라미드가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연결된 수많은 장이 접합된 다차원의 공간이다.

“칼더의 모빌처럼 어느 한 지점이 불균형해지면 금방 다른 지점에 영향을 미쳐서 모든 금속판이 위치와 방향을 달리하며 움직이거나 흔들린다.”(부르디외) 그것은 마치 하나의 작은 우주 같기도 하며 서로 다른 관계, 입장들 사이의 미묘한 힘겨루기 공간인 것이다. 칼더의 ‘모빌’이 심미적인 차원을 넘어서 사회학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이유이다.

이준 전 리움미술관 부관장·미술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