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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된 정보라도 영업비밀"…맥주제조기 유출 사건 결말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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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경. 뉴스1

대법원 전경. 뉴스1

부품 혹은 기술 일부가 공개된 정보라도 이들을 조합하는 방식이 새롭고 가치있는 정보일 경우 ‘영업비밀’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전 직장에서 개발한 가정용 맥주제조기 도면 등을 빼돌려 새 업체를 차린 A씨와 직원 등 5명에게 일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돌려보낸다고 6일 밝혔다.

퇴사 직후 회사 세운 대표…아이템은 ‘가정용 맥주제조기’

A씨는 맥주제조기 업체에서 14개월 남짓 상무로 재직하다 2016년 3월 퇴사한 뒤 한 달 뒤 가정용 맥주제조기 회사를 미국에 차렸다. 함께 일하던 부장, 차장, 선임연구원, 주임연구원과도 퇴사 전부터 ‘우리 퇴사하고 맥주제조기 사업을 하자’며 모의했고 이들도 A씨의 회사에 합류했다.

이들이 다니던 전 회사는 2014년부터 가정용 맥주제조기 개발에 60억을 투자해 2015년 7월 첫 시제품을 냈고 2016년 3월 2차 시제품까지 냈다. 피고인들은 모두 이 맥주제조기 개발에도 참여했었다. 검찰은 이들이 사업기획서와 시장조사 보고서, 맥주제조기 공정흐름도 및 도면 초안, 손잡이 부문 도면 등을 유출해 사업에 이용했다며 A씨 및 직원 4명과 회사까지 부정경쟁방지법‧업무상 배임 혐의로 2018년 기소했다.

이들이 사업기획서와 시장조사 보고서를 무단으로 반출해 자신들의 사업에 이용한 점은 1심, 2심에서 모두 유죄가 인정됐고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법원은 이 자료들이 ▶알려지지 않고 경제적 가치가 있는 자료이며 ▶기밀로 관리되고 있던 영업비밀을 이용한 점에 대해 부정경쟁방지법 및 업무상 배임을 인정했다.

“각 부분 비밀 아니어도…유기적 조합은 영업비밀”

다만 ‘맥주제조기 공정흐름도 및 도면’, ‘손잡이 부분 도면’ 영업비밀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선 하급심 판단이 엇갈렸다. 부정경쟁방지법 및 판례에 따른 ‘영업비밀’이란 ▶공공연히 알려져있지 않고 ▶독립적인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것 을 뜻한다.

1심 재판부는 공정흐름도와 손잡이 도면은 ‘영업비밀이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맥주를 만드는 단계를 적은 공정흐름도는 ‘세척 및 살균 - 원액 혼합 - 공기 공급 - 식힘 - 효모 투여 - 홉 오일 투여 - 기타 첨가물 투여 - 1차 발효 - 2차 발효 - 숙성 - 맥주 취출’ 각 단계를 자세히 적었지만, 통상적으로 ‘맥즙 제조 - 홉 투여 - 식힘 - 발효조 세척 - 효모 투여 - 발효’로 알려진 맥주 제조 순서와 크게 다르지 않고, 맥주제조기를 곧바로 만들 수 있을 만한 구체적 실험 결과 등을 적은 건 아니라는 이유였다. 손잡이 도면도 ‘알려지지 않은 정보가 아니다’라며 영업비밀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2심은 이 중 손잡이 도면은 ‘영업비밀’로 인정했다. 완성된 맥주를 뽑아내는 손잡이를 만드는 데 구성품 5개, 기술 5개가 들어가는 데 ‘각 기술을 조합하기 쉽지 않으며, 기존에 알려진 기술로 보기 어렵다’는 감정결과를 인정했다.

대법원은 더 나아가 ‘공정흐름도’도 영업비밀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전 회사를 통하지 않고 이런 정보를 입수하긴 어렵고, 입수하려고 해도 적지 않은 비용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며 “개별 부분들이 기존에 알려진 것이라도 이를 유기적으로 조합한 구성과 구조는 업계에 일반적으로 알려진 정보가 아니”라는 이유다.

1심에서는 A씨는 벌금 1500만원, 나머지 피고인은 벌금 750만원형을 받았고 2심에선 유죄 부분이 추가되며 A씨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 나머지 피고인들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 및 법인에 벌금 2000만원이 선고됐다. 대법원이 공정흐름도 부분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해 사건은 다시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돌아가 심리를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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