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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자녀 되찾은 러닝머신 美아빠 "애들이 달리기 흉내내요"

중앙일보

입력

2024년 5월 1일 화상으로 만난 존 시치 씨. 아이들을 다 재우고 난 뒤 늦은 저녁 시간에 인터뷰가 가능했다. 김정연 기자

2024년 5월 1일 화상으로 만난 존 시치 씨. 아이들을 다 재우고 난 뒤 늦은 저녁 시간에 인터뷰가 가능했다. 김정연 기자

한국인 여성 A씨와 2013년 8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결혼 후 아들과 딸을 차례로 얻었다. 그러나 2019년 A씨는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귀국해버렸다. 아이들을 따라 한국에 들어와 ‘아내가 데려간 아이들을 돌려달라’며 전국을 돌아다니며 러닝머신을 타는 1인 시위를 해 ‘러닝머신 타는 아빠’로 이름이 알려졌다. 그러던 그가 지난달 18일 아이들과 함께 드디어 미국 땅을 밟았다. 아이들이 엄마 손에 이끌려 미국 집을 떠난 지 4년 5개월, 자신이 2020년 8월 아이들을 찾으러 한국에 온 지 3년 8개월 만이다. 미국인 존 빈센트 시치(54)씨 얘기다.

“애들이 진짜 내 옆에 있다니, 아직은 꿈 같아요”

지난 1일 화상 인터뷰로 만난 시치 씨는 “아이들을 데려오는 과정부터, 미국에 와서도 내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아직은 감격을 천천히 느낄 틈이 없이 그냥 꿈꾸는 것 같다”며 “아이들이 적응할 수 있게 모든 걸 세팅하느라 매일이 정신없다”고 전했다. 4년동안 거의 돌보지 못한 집을 다시 단장하고, 아이들에게 시치 씨의 대가족과 미국 생활을 알려주다 보니 하루가 다 간다고 했다.

‘러닝머신 시위 아빠’의 아이들 찾기…5번 실패, 6번째 성공

미국 아빠 시치 잔 빈센트(53)씨가 지난해 경기남부경찰청 앞에서 아이들을 되돌려달라며 무동력 러닝머신을 걷고 있다. 손성배 기자

미국 아빠 시치 잔 빈센트(53)씨가 지난해 경기남부경찰청 앞에서 아이들을 되돌려달라며 무동력 러닝머신을 걷고 있다. 손성배 기자

시치 씨는 한국 법원에 아동반환청구소송을 냈고, 2022년 2월 대법원에서 ‘아이를 돌려주라’는 확정판결까지 받았다. 아직 미국에서 이혼이 완료되지 않았지만, 엄마가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버린 탓에 미국 샌프란시스코 법원에서 ‘양육권은 시치 씨에게 있다’고 결정한 데 따른 것이다. 시치 씨와 법원 집행관들은 2022년부터 다섯 차례 아이들을 데리러 갔지만 아이들이 없거나, 울면서 거부하는 바람에 모두 실패했었다.

그러나 지난달 15일 수원에 있는 아이들 이모네 집에서 아이들을 데려올 때는 법원 집행관과 함께 아동심리 전문가가 함께 갔다. 시치 씨는 경찰 대신 사설 경호 인력을 데려갔다. 설득 끝에 집 안으로 들어가서는 경호 인력이 아이들과 엄마 사이에 벽을 만들어 늘어섰고, 동행한 전문가들이 아이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진정시켜가며 함께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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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지난달부터 시행된 대법원 ‘헤이그 국제아동탈취협약에 따른 아동반환청구 사건의 집행에 관한 예규’에 따른 것이다. 아동 인도사건에서 강제집행이 필요할 경우 집행 보조자로 아동 관련 전문가를 참여시키고, 기존과 달리 현장에서 아동 당사자의 거부 의사를 반영하도록 하는 조항이 없는 예규다.

그 사이 시치 씨는 집 안에 들어가지 않고, 차에서 아이들을 기다렸다. 차 두 대를 준비해 두 아이가 따로 차에 타서 각각 아동심리 전문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했다. 시치 씨가 있는 차에는 큰 아이가 탔다. 아이들은 처음엔 ‘왜 떠나야 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했다. 시치 씨는 “아이에게 ‘우리 이제 미국 가는 거야, 비행기 타는 거야’ 설명하고, 컬러링 북 같은 걸 준비해두고 집중하면서 안정을 찾을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시치 씨가 한국에 와서 아이들을 만난 게 처음은 아니다. 2021년 법원의 중재로 지난해 7월까지 10여 차례 면접교섭을 통해 아이들을 만났지만 지난해 8월 이후 A씨의 반대로 아이들을 보지 못했다. 시치 씨는 “아이들이 ‘진짜로 미국에 간다’는 것에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서 엄청 긴장하면서 갔다”며 “아이들에게 첫 마디를 어떻게 건넸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혼란스러웠다”고 전했다. 아이들과 같이 밥을 먹고 싶었다는 시치 씨는 “아이에게 ‘우리 밥 뭐 먹을까? 돈가스? 치킨?’ 이런 대화를 했던 것 같다”고 돌이켰다. 출국이 늦어져 한국에 머물게 되면서, 그날 밤엔 아이와 함께 치킨을 먹었다고 했다.

“미국이었다면 곧장 경찰 개입했을 텐데…” 4년 만에 찾은 일상

2024년 4월 아이들과 함께 미국으로 돌아간 존 시치 씨와 아이들. 존 시치 씨 제공

2024년 4월 아이들과 함께 미국으로 돌아간 존 시치 씨와 아이들. 존 시치 씨 제공

2019년 한국으로 떠났을 때 1살과 2살이었던 시치 씨의 두 아이는 지금은 6살과 7살이 됐다. 큰 아이는 초등학생이라, 2일부터 미국 학교에 정식으로 등교했다. 아이들은 새로운 환경에 대한 낯섦보다 신기함이 더 크다고 했다. 아이들이 다행히 대화에 무리가 없는 영어를 구사해, 시치 씨와도 통역 없이 원활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정도라고 한다. 시치 씨는 “큰아이는 거의 완벽하고, 작은 아이도 영어를 잘하긴 하는데 가끔 첫째에게 ‘이 단어를 영어로 뭐라고 하지?’ 하면서 묻는 게 너무 귀엽다”며 웃었다.

요즘 그는 아이들에게 아빠의 나라를 소개하고 있다. 공원, 바다, 놀이터 등에 데리고 다녔다. 옷도 사고 예방접종을 하러 병원에도 갔다. 도시 구경을 하던 중 H마트(한인마트)에 갔을 땐 아이들이 익숙한 한국 제품을 보고는 반가워했다고 한다.

2024년 4월 아이들과 함께 미국으로 돌아간 존 시치 씨와 아이들(사진 아래쪽 2명). 존 시치 씨 제공

2024년 4월 아이들과 함께 미국으로 돌아간 존 시치 씨와 아이들(사진 아래쪽 2명). 존 시치 씨 제공

시치 씨 역시도 아이들을 배우고 있다. 아이들이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 뭘 무서워하는지 등을 새롭게 알아가는 중이다. 큰 아이는 수학과 게임을 좋아해 게임을 좋아하는 시치 씨의 남동생과 재밌게 놀고 있다고 한다. 작은 아이는 먹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 커서 치즈닭갈비 등등 여러 음식을 같이 만들어서 먹어보고 있다고 했다. 아이들이 귀신 이야기를 좋아해서 시치 씨에게 ‘옥수역 귀신’ 이야기도 해줬다. 큰 아이는 한국에서 하던 태권도를 미국에서도 하고 싶어 해 태권도 학원을 찾아보는 중이다. “평화롭게 왔다면 좋아하는 장난감, 책 등을 가져올 수 있었겠지만 갑자기 오느라 모두 놓고 나왔다”고 시치 씨는 아쉬워했다.

시치 씨가 언제 아이들을 데리고 올지 몰라 거의 4년간 연락만 취해뒀던 한국어-영어 이중언어 소아 심리상담가와도 만나며 아이들의 적응을 돕고 있다. 시치 씨의 형제자매, 사촌 및 조카 등등 대가족들도 번갈아가며 아이들을 보려고 찾아오거나 영상통화를 건다. 시치 씨는 “아이들은 미국에 이런 대가족이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몰랐었는데, 이제 모두와 익숙해져서 미국 가족‧한국 가족이 각각 있다는 걸 생각할 줄 안다”고 전했다. 시치 씨는 그러면서 “아이들이 한국과 미국, 양쪽의 문화와 언어를 다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시치 씨가 한국에서 러닝머신 시위하는 걸 아이들도 아는지 “러닝머신!”하며 달리는 흉내를 내기도 했다고 한다. 시치 씨는 “내 인생에 이런 경험을 기대한 적이 없는데 정말 힘든 4년이었다”며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준 덕에 문제가 세상에 드러나고 시스템이 나아지는 데 일조했다는 것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다만 “미국에서 이혼 및 아동탈취사건이 벌어졌다면 당장 형사 사건이 돼서 경찰이 강제개입했을 텐데, 한국에선 기관 간 협조가 너무 안 돼서 힘들었다”며 “법이 일부라도 개정된 건 감사한 일이고, 앞으로도 더 많이 개선돼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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