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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발레’는 어떤 색깔? 동화·전설 벗어난 ‘여기·오늘’의 발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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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8호 20면

봄의 제전

봄의 제전

춤이란 비일상적인 움직임이다. 평소 취할 일 없는 동작을 보거나 하면서 쾌감이 발생한다. 그게 극대화된 게 발레다. 중력의 반대 방향으로 몸을 뻗고 날아오르는, 천상의 몸짓이다. 클래식 발레가 전설 속 요정이나 환상 속 공주·왕자 이야기에 입혀진 이유다.

48년 만에 탄생한 공공발레단의 무대는 좀 다르다. 오세훈 시장의 강한 의지로 6개월 만에 초스피드로 창단한 서울시발레단은 상류층의 전유물로 통해 온 발레의 대중화를 목표로 삼고 있다. 지난달 26~28일 개최된 창단 사전 공연 ‘봄의 제전(사진)’은 8월 창단 공연 ‘한여름밤의 꿈’을 내놓기 전 맛보기 성격이었지만, 발레단의 색깔을 분명히 드러냈다.

흥미로운 건 ‘컨템포러리 발레단’이라는 점이다. 기성 발레단은 좀처럼 고전발레 색깔을 벗어나지 못한다. 고정 발레팬들의 귀족적 취향을 만족시켜야 해서다. 신생 발레단이 과감히 ‘오늘의 발레’로 더 많은 대중에게 구애하고 나선 셈인데, 과연 성공할까.

1913년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스트라빈스키의 불협화음과 니진스키의 야성적 안무로 발레계를 뒤흔든 ‘봄의 제전’을 제목으로 내걸었지만, 충격은 없었다. 당시 혁명이었던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이 이제 고전이 됐듯, 서울시발레단의 무대도 보기 편했다. 말 그대로 여름 공식 창단공연에 앞서 봄에 바치는 제의처럼 보이기도 했다.

안성수·이루다·유회웅 세 안무가의 개성이 뚜렷한 트리플빌이었지만, 공연을 관통하는 철학이 있었다. 막을 연 것은 유회웅의 ‘No More’. 수트를 입은 남자가 지친 기색으로 등장하더니, 곧바로 격렬한 군무가 시작되고, 어느새 좀 특이한 발레 씬이 펼쳐진다. 남성 댄서가 토슈즈를 신거나 동성끼리 2인무를 추는 식이다. 반복되는 일상을 초월하는 춤의 세계 그 자체다. 이어진 이루다의 ‘Bolero24’는 빛과 어둠의 대비를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조명과 영상을 듬뿍 활용해 컨템포러리 발레의 조상격인 모리스 베자르의 ‘볼레로(1960)’를 재해석했다. 대미를 장식한 현대무용가 안성수의 ‘Rose’는 무브먼트의 정체성을 규정할 수 없는 숨가쁜 템포로 발레와 현대무용의 경계를 파괴해 버렸다.

문턱을 낮췄을까. 600석 규모 극장의 3일 공연이 전석 매진됐는데, 국내 첫 공공 컨템포러리 발레단 탄생을 목격하러 온 문화계 인사들도 많았다. 발레단은 선장격인 예술감독 없이 시즌 단원만 뽑아 가볍게 출항했다. 1인 독재 대신 외부 자문을 폭넓게 수용하고 보다 많은 무용수들에게 기회를 열기 위해서라는데, 한동안 일관된 방향성은 찾기 어려울 수 있다. 일상을 벗어나고 싶되 외국 동화나 전설에 공감 못 하는 대중에게 ‘여기, 오늘’의 발레를 제시한 것 만큼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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