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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독약 아닌 쓴 약…일단 '빡공'해 20대가 표 줘야 할 이유 찾겠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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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8호 08면

여당 3040 모임 ‘첫목회’ 4인, 보수정치의 미래를 고민하다 

보수 정당은 총선 기준으로 12년간 정치적 황무지(political wilderness)에 머문다. 지금대로면 더 오래일 수 있다. 보수를 지지하는 세대가 퇴장하고 반목하는 세대는 다수가 된다. 여당으로 정책(미래)을 말할 수 있는 이번에도 심판(과거)에 집중할 정도로 당력도 한계다.

지난 2일 첫 공개 세미나로 활동 개시

국민의힘 소장파 모임인‘첫목회’회원들. 왼쪽부터 이종철·한정민·이재영 조직위원장과 김재섭 당선인. 최기웅 기자

국민의힘 소장파 모임인‘첫목회’회원들. 왼쪽부터 이종철·한정민·이재영 조직위원장과 김재섭 당선인. 최기웅 기자

이런 속에서도 신발 끈을 조여 매는 이들이 있다. 이른바 ‘첫목회’로 대부분 수도권 등 험지에서 출마한 3040들이다.  “전사(戰死)는 했지만 정치적 에너지는 가장 많이 가지고 있을 때”(박상수 인천 서갑 후보)란 이들이 2일 공개 세미나를 시작으로 활동에 들어갔다.

앞선 지난달 27일 김재섭 서울 도봉갑 당선인과 이재영(서울 강동을, 간사)·이종철(서울 성북갑)·한정민(화성을) 조직위원장을 만나 생각을 들었다. 중도와 젊은 층을 향한 새 정책을 만들어내겠다는 이들은 “당의 주력인 영남 원내 계신 분들이 쓴 약과 독약은 구분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 우린 절대로 독약이 아니다”라고 했다.

어려운 선거였다.
김재섭=“후보들이 다 무기력감 같은 걸 느꼈을 것이다. 바람이 너무 셌다. ‘당신은 좋은데 당신 당은 못 찍겠다’는 말을 한 번씩은 들어봤을 텐데 개인적으로 제일 힘 빠지는 얘기였다. 내 노력과 무관하게 답이 정해져 있는 느낌이었다.”
이종철=“3월 초중반이 되면서 분위기가 전과 같지 않다고 느꼈다. 그런데도 사전투표 후 주말에 사람들이 모이는 천변에 갔는데 저를 찍었다는 분이 많아 일요일엔 세 봤다. 10명 중 7명 정도였다. 결과적으론 아침저녁으로 출퇴근하는 분들의 무서운 민심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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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에선 양자 구도다. 화성을에선 여당 후보가 3등이었다. 당사자인 한 위원장은 “나중엔 누가 더 싫은가 대결하는 선거였는데 나보다 훨씬 더 잘 싸우는 사람이 지역에 있었다”며 “나를 찍어달라고 할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고 했다.

인구정치적으로 다음 선거는 더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다.
이재영=“지금 상황으로 보면 2년 후에 있는 지방선거에 비관적이고 대선도 연장선에서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현재 당의 저력으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수도권에서 뛰었던 사람들은 회의적이다. 선거 결과를 거의 부정하는 것 같은 모습이 비치면서 과연 희망이 있을까 싶다.”
어떤 모습이 그랬나.
이재영=“단편적이긴 하나, 1차 당선자 모임이 축하하는 자리였다고 하더라. 당이 이렇게 돼 있는데 축하할 일인가.”
2월 말 3월 초 대통령실발 논란이 결정적이었다는 말이 나온다.
김재섭=“그간 누적됐던 것의 기폭제였다. 대표적으로 대파 논란 같은 건데 대통령이 말하고자 했던 건 875원이 아니었다. 충분히 맥락이 있는데 왜곡된 것도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화를 낸 건 그간 누적된 불만이 있었다는 거다. 2년 간 국민 불만이 적재적소에 해결되지 않아 총선을 기점으로 다 쏟아져 나온 것이다.”
이재영=“정권심판론이 있었지만, 우리가 그 프레임에 빠져서 선거를 치렀다. 결국엔 이조(이재명·조국) 심판으로 갔는데 전쟁터로 치면 그쪽 전쟁터에서 치른 거다. 선거는 당이 치르는 거다. 사람도 없었고 콘텐트도 없었다는 게 여실히 드러났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비판하자면 많지만 지금 얘기할 건 당이다. 당이 제대로 이끌지 못했다는 부분에 대해 큰 아쉬움이 남는다.”
여전히 2, 3년을 좌우할 건 대통령이다. 최근 윤 대통령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회동하는 등 이전과 달라진 모습을 보이던데.
김재섭=“변화 의지를 보여주는 확실한 시그널이긴 하다. 그런 변화가 체감되어야 하는 부분에선 아쉬움이 많다.”
이재영=“질문 자체가 다시 대통령에게 뭘 맡기자는 건데 우리 당이 해선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결국엔 대통령의 변화에 달려있다고 우리가 받아들이면 안 된다. 이번 총선에서 몇 가지 체크된 게 있다. 65 플러스(65세 이상)를 빼곤 다 떠났다. 우리 당은 수도권 선거를 치를 전술과 전략이 없다는 것도 확인됐다. 이제 우리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비전과 방법을 제시하고 토론하기 위해 첫목회가 결성된 것이다. 대통령을 바꾸기 위해, 대통령에게 어떻게 하라고 요구하기 위해서 결성된 게 아니다. 우리 걸 가지고 유권자에게 다가가지 않고 대통령이 잘하면 당이 잘 되겠다, 그걸 기대하면서 정치하는 건 리스크가 너무 크다.”
이종철=“민주화가 심화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국민들은 야당보다 여당이나 권력자를 중심으로 판단한다. 국민들은 윤 대통령에게 매우 엄격한 기대를 가졌다. 윤 대통령이 김건희 여사의 디올백 문제가 나왔을 때 즉각적으로 사과를 했다면 우리가 승리할 수도 있었을 것, 이렇게까지 생각했다. 제일 중요한 게 공정과 상식이 무너진 것이라고 본다. 두 번째 소통과 공감 능력이고 세 번째가 무능이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들어오면서 (유권자들이) 흡족하지 않지만 넘어가려던 게 윤 대통령의 TV 대담 등 대응 모습을 보며 이전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이거 안 되겠구나’ 해서 쏠렸던 것 같다. 당이 따로 가더라도 대통령과 관련되어서든, 당의 직접적인 것이든 공정과 상식, 공감·무능에서 차별화를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대통령이 국민 보기에 잘 이해가 안 된다고 하면 당이 ‘아니다’라고 해야 한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국민의힘 계열엔 이전에도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으로 대표되는 개혁성향의 소장파 움직임이 있었다. 최근 7년여 미약했지만 말이다.

기후·젠더·환경 등 새 담론 제시해야

지금 첫목회는 무엇을 할 수 있다고 보나.
이재영=“우리가 무너지면 안 되겠다, 당을 어떻게 해서든 수도권 중심 정당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겠다는 것이다. 총선 3연패라지만 서울만 따지면 4연패다. 수도권에서 인재영입이 굉장히 힘들어졌고 수도권 어젠다가 보수 진영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미래연대나 민본21이 있던 때엔 소장파가 말하면 들어주는 문화가 있었다. 네 번 선거에서 지면서 어젠다와 이슈, 사람들이 특정 지역에 몰리면서 들어줄 준비가 사라진 것 같다. 당내 쓴소리를 ‘잘되라고 하는 얘기’로 듣는 게 아니라 ‘내부총질’로 설명해버리는 굉장히 이상하고 배타적인 문화가 생겼다.”
한정민=“(국민의힘이) 우리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정당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더 많이 공부해서 지선이든 대선이든에서 말해주고 싶다. 사실 젊은 친구들이 우리에게 감정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 그걸 흡수하지 못할 뿐이다. 2030에게 어젠다를 주고 싶고 이들이 활동할 단체들이 보수 진영엔 거의 없는데 그런 걸 만들고 싶다. 지금은 자리가 없어서 함께 가는 동지가 아니라 서로 (한정된 자리를 두고 다투는) 경쟁자다. 각자도생해야 하니 장기적으로 하기도 어렵다. 사람이 없다는데 사람을 키우지 않으니 없는 것이다. 청년 생태계를 양성해야 한다. 우리가 정부일 때 하지 않으면 다음 총선은 물론 다다음 총선도 어려울 것이다.”
김재섭=“보수 정당이 20대 이하의 유권자에 매력적인 담론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는 큰 문제다. 예를 들어 반공 보수, 경제 만능 보수, 이건 5060 이상엔 호소력 있을지 몰라도 (그 아래엔) 잘 피부에 안 와 닿는다. 그런 세대엔 그다음 담론을 제시해야 되는데 이민문제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 20대 반중 정서를 우리가 적절하게 핸들링할 수 있는가 등이다. 기후·젠더·환경 담론도 없다. 이들이 우리에게 호감이 있더라도 표를 줘야 할 이유는 없는 거다. 담론을 생성하는 기능을 첫목회가 해야 된다고 본다. 끊임없이 20대가 우리한테 표를 줘야 하는 이유를 개발하는 역할이다.”
이종철=“서울에선 민주당과 표차가 지난번보다 줄었다. 어찌 보면 국민이 (표를) 주려고 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 소중하게 봤으면 좋겠다. 혁신이란 게 어려운 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성찰하며 국민의 지극히 상식적인 사고 수준에 맞추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여간다면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초선 중 다수가 대통령을 두둔하는 연판장을 낸 게 논란이었다.
한정민=“우리 슬로건이 일단빡공, 일단 빡세게 공부다.”
이렇게 하면 다음에 될 거라고 보나.
이재영=“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다음에 안 된다. 22대 국회 구조상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게 우리 같은 사람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21대보다 훨씬 더 힘든 여소야대가 될 텐데, 현역 분들은 정치 상황에서 벗어난 활동을 할 수 있을까. 첫목회는 자주 모여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좋은 콘텐트를 만들어내 당에 전달하고 보수 진영을 포함한 일반 대중에게도 오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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