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 금지, 코골이 환영"…12시간 자면서 듣는 이색 콘서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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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오후 7시 서울 서초구 세빛섬 플로팅 아일랜드 컨벤션에서 열린 ‘베스트드림콘서트’는 3일 오전 7시에 끝났다. 황지영기자

지난 2일 오후 7시 서울 서초구 세빛섬 플로팅 아일랜드 컨벤션에서 열린 ‘베스트드림콘서트’는 3일 오전 7시에 끝났다. 황지영기자

관객은 누워있는 77명, 공연 시간 720분. 규칙은 박수와 함성 금지, 코골이 환영.

콘서트를 보러 오면 재워주는 수상한 공연이 지난 2일 오후 7시 서울 서초구 세빛섬 플로팅 아일랜드 컨벤션에서 열렸다. 공연장 객석엔 의자 대신 700만원 상당의 침구 세트가 마련됐고, 출연 가수들은 잠옷을 입고 조용히 나타나 자장가를 들려주곤 사라졌다. ‘수면 위에서 수면한다’는 콘셉트로 열린 ‘베스트드림콘서트’ 얘기다.

이색 공연은 서진원 바른수면연구소 소장(40)과 카카오M 제작총괄 출신 박준철 노미놈 대표(46)의 합작으로 탄생했다. 서 소장의 “수면 페스티벌을 여는 것이 꿈”이란 말에 박 대표가 가수 섭외 등 공연 담당을 자처하고 나섰단다. 공연은 평소 오후 10시 취침, 오전 6시 기상하는 서 소장에 맞춰 기획됐다. 잠들기 세 시간 전인 오후 7시부터 차분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다음날 오전 6시 기상 알람이 울리도록 했다. 피날레는 오전 8시 현악4중주의 평화로운 아침 연주였다.

관객들이 누워서 볼 수 있도록 머리 위 스크린이 마련돼 있다. 황지영기자

관객들이 누워서 볼 수 있도록 머리 위 스크린이 마련돼 있다. 황지영기자

경북 경산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올라왔다는 김명규(52)씨는 “불면증은 없지만, 특이한 콘서트라 생각되어 예매해서 왔다. 와보니 의자 대신 77개의 침구가 공연장에 깔려있는 게 신기했다”고 말했다.

서 소장은 참가자들에 숙면의 중요성을 피력하는 프레젠테이션으로 공연을 열었다. 그는 “수면의 중요성을 연구하며, 10년 전부터 이 콘서트를 꿈꿔 왔다. 관객 분들이 오늘 잘 자는 것도 좋지만 중요한 건 앞으로도 잘 잘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 소장도 이 공연장에서 잠을 청했다.

'베스트드림콘서트'의 포토월에 주최 측이 마련한 침구세트가 붙어 있다. 황지영기자

'베스트드림콘서트'의 포토월에 주최 측이 마련한 침구세트가 붙어 있다. 황지영기자

코 골면 침대 업그레이드

콘서트는 철저히 숙면에 초점을 맞춰 진행됐다. 잠을 편히 잘 수 있는 실내온도인 21~23도를 유지했고, 40~60%의 적정습도를 유지하기 위해 가습기도 곳곳에 설치돼 있었다. 개인별로는 스마트폰을 가둬둘 수 있는 ‘미니 감옥’이 지급돼 눈길을 끌었다. 이밖의 불편사항은 ‘숙무원’이라 불리는 숙면을 돕는 안내원을 통해 해결할 수 있도록 했다.

관객들이 모두 누운 오후 8시 30분엔 가수 윤딴딴이 잠옷을 입고 침대로 꾸며진 무대 위에 앉았다. 기타 연주와 함께 노래 ‘밤에 잠이 안 올 때’를 부드러운 목소리로 불러줬다. 환영의 박수와 함성 대신 포근한 분위기가 공연장을 감쌌다. 스크린이 머리 위에 있어 누워서 가수들을 보기에도 편했다.

자는 관객들 앞에서 노래하는 가수 윤딴딴. 황지영기자

자는 관객들 앞에서 노래하는 가수 윤딴딴. 황지영기자

이어 등장한 이진아도 하얀 잠옷을 입고 침대에 앉아 준비한 자장가를 들려줬다. 그는 “항상 공연에선 호응을 유도하려고 노력해야 했는데, 이번엔 그런 부담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노래를 차분히 부를 수 있어서 고요하고 좋았다”며 색다른 분위기를 즐겼다.

이들 가수외에도 첼리스트 원민지, 피아니스트 윤한, 성우 김두희의 오디오북 낭독, 앰비언트 장르(우주적인 분위기의 음악)를 대표하는 DJ 베터의 공연이 자정 넘도록 이어졌다. 심야엔 수면을 돕는 화이트 노이즈가 연속 재생돼 편안한 숙면을 도왔다.

혹시 모를 코골이 관객을 위해선 별도 공간에 킹 사이즈 침구를 준비했다. 박 대표는 “코골이 세 번이면 슈퍼 싱글(관객석)에서 킹으로 침구가 업그레이드된다. 우리 공연에선 VIP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베스트드림콘서트' 관객들은 한강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며 기상한다. 독자제공

'베스트드림콘서트' 관객들은 한강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며 기상한다. 독자제공

7만원의 행복

관객들이 지불한 티켓값 7만원(얼리버드는 5만원)엔 먹는 것도 포함됐다. 공연 종료 시간인 익일 오전 7시까지 이용 가능한 케이터링엔 커피나 맥주 등 숙면을 방해하는 식품은 없었다. 캐모마일 차와 우유, 숙면에 좋은 키위와 아몬드 등이 준비됐다. 또 주최 측은 관객석에서 베고 잔 베개와 입고 잔 잠옷을 비롯한 20만원 상당의 ‘꿀잠 키트’(수면안대·수면양말·필로우 스프레이·퍼퓸택·손거울·포스트잇·젤 잉크 펜·파우치·귀마개)도 지급했다.

서 소장은 “‘잠은 죽어서 자라’는 말은 잘못됐다. 지금 잘 자야 일도 공부도 잘 할 수 있고,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다”면서 “지급한 키트 내용물은 숙면을 연구하며 직접 개발한 제품들이다. 수익성을 생각하면 할 수 없는 페스티벌이지만, 숙면을 위해 꼭 해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이진아의 피아노 연주에 잠드는 관객들. 사진 베스트드림콘서트

이진아의 피아노 연주에 잠드는 관객들. 사진 베스트드림콘서트

‘베스트드림콘서트’는 하반기 공연도 계획하고 있다. 박 대표는 “서울시에서 ‘한강 잠퍼자기 대회’를 11일에 연다고 들었다. 그만큼 수면에 대한 현대인의 관심이 높아졌다고 느낀다. 우리 또한 수면에 진심이다. 2회 공연도 잘 준비해, 잘 자는 것에 대한 가치를 널리 알리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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