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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한령 모른 체하던 미국이 태도 바꾼 이유는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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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갈등. 게티이미지뱅크

미중갈등. 게티이미지뱅크

2016년 주한미군이 한국에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를 배치하자 중국은 한국 상품과 관광, 문화 콘텐츠와 현지 한국 기업들에 전방위로 불매운동과 제재를 가했다. 2020년 호주가 중국에 대한 코로나19 정밀 조사, 홍콩보안법 철회를 주장하자 중국은 호주산 석탄, 와인, 소고기 등 수입을 금지·규제했다. 두 나라는 미국과 지근거리 동맹국이란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이 우방들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트럼프는 임기 내내 중국·러시아에 맞서 동맹국들과 공동 전선을 펴는 것에 별 관심이 없었다. 대신 미·중 무역전쟁을 일으키며 중국에 직접 부딪쳤다.

현재 미·중 경쟁의 양상은 다르다. 두 강대국이 직접 대결하는 대신 각자 우방국에 대한 정책을 통해 ‘스리쿠션’으로 상대를 공격한다. 조 바이든 정부는 일관되게 동맹과 결속해 중국을 압박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미국과 무역전쟁으로 된통 곤욕을 치렀고 지금도 경제 문제가 발등의 불인 중국은 미국과의 정면 대결하는 모습을 가급적 피하려 한다. 대신 미국의 동맹국들에 압력을 넣고 우군들을 지원한다.

2020년 9월 29일 조 바이든 민주당 대통령후보 [로이터]

2020년 9월 29일 조 바이든 민주당 대통령후보 [로이터]

최근의 몇몇 뉴스들이 이런 경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미국 정부가 3년 전에 중국의 경제적 강압에 대한 대응 전담팀을 구성했다고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중국으로부터 경제 제재를 당한 동맹들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이다. 직접적 계기는 리투아니아에 대한 중국의 경제 압박이었다. 중국은 리투아니아가 2021년 11월 수도 빌뉴스에 대만 대표부 개설을 허용하자 교역을 끊는 등 경제 보복을 했다. 이에 대해 미국은 수출입은행에서 6억 달러 상당의 신용을 제공하고 농산물을 미국에 수출하기 더 쉽게 해주는 등 여러모로 리투아니아를 지원했다. 미 정부는 한국과 호주를 미국이 돕지 않은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호세 페르난데스 미 국무부 경제차관은 블룸버그에 “우리는 이 영화를 본 적이 있으며 이제 영화 테이프를 멈출 때가 됐다고 결정했다”고 말했다.

전담팀은 페르난데스 차관 밑에서 중국 정책조정관으로 있는 멜라니 하트가 이끌고 있고 총 8명으로 구성돼 있다. 일종의 컨설팅회사처럼 운영되며 비공식적으로는 ‘회사(the firm)’로 불린다. ‘고객’ 국가가 도움을 요청하면 국무부 경제학자들이 해당 국가와 중국의 교역 관계에서 취약점을 분석한 뒤 수출시장을 중국 외 지역으로 다변화할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돕는다. 해당 국가가 요청할 경우 공개적인 지지를 표명하고, 중국의 행동에 대한 다양한 대응을 모색하는 ‘가상 훈련(TTX)’을 하기도 한다.

페르난데스는 “여러 국가들이 ‘우리도 리투아니아와 같은 대우를 원한다’고 말하며 온다”고 했다. 리투아니아 지원 이후 10여 개 국가가 중국의 경제적 압박에 대비하거나 이를 완화할 방법에 관한 안내를 요청해왔다고 한다. 중국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중인 필리핀은 중국이 필리핀산 농산물을 불매할 가능성에 대비해 새로운 수출시장 개척과 농업 분야 지원 등에 대해 국무부의 조언을 받고 있다.

중국은 이렇게 미국의 지원을 받는 필리핀을 때리고 있다. 30일엔 영유권 분쟁 해역인 남중국해 스카버러 암초(중국명 황옌다오·黃岩島) 인근에서 필리핀과 충돌했다. 해경선 4척 포함 중국 선박 10척이 나타나 필리핀 해경선 2척을 물대포로 공격, 1척이 파손됐다고 필리핀 해경이 밝혔다. 물론 중국 당국은 ‘합법적 조치였고 필리핀이 중국 주권을 침범했다’고 맞받았다.

최근 중국-필리핀 간 영유권 분쟁이 격화하며 중국 네티즌들의 사이버 화력도 폭증했다. 지난 1분기에 필리핀을 겨냥한 사이버 공격이 전년 동기의 325%였다고 한다. 조사 결과를 발표한 곳은 미국 보안회사 리시큐리티였다. 지난 2월 필리핀 정보통신기술부는 중국에서 활동하는 해커들이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과 정부 부처 웹사이트, 이메일 등에 침입을 시도했다고 발표했다. 리시큐리티는 중국이나 북한에서 정부 지원을 받는 해커들의 소행으로 보인다고 했다.

중국은 또 북한과 러시아를 간접 지원하며 미국의 신경을 곤두서게 하고 있다. 러시아 선적 화물선 앙가라(Angara)호가 지난 2월부터 중국 저장성 동부의 저우산 신야 조선소에 정박해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25일 영국 싱크탱크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를 인용 보도했다.

2024년 1월 22일(현지시간) 가디언이 입수한 미공개 영국 국방 정보 보고서에는 러시아 선박인 마이아호, 앙가라호, 마리아호 등 세 척이 지난해 9월부터 12월 사이에 북한 나진항에서 컨테이너를 싣는 장면이 담겼다. 가디언 캡처.

2024년 1월 22일(현지시간) 가디언이 입수한 미공개 영국 국방 정보 보고서에는 러시아 선박인 마이아호, 앙가라호, 마리아호 등 세 척이 지난해 9월부터 12월 사이에 북한 나진항에서 컨테이너를 싣는 장면이 담겼다. 가디언 캡처.

앙가라호는 북한이 지난해부터 러시아로 컨테이너 1000개 분량의 군사 장비와 탄약을 실어나른 2척의 선박 중 하나다. 미 재무부와 국무부는 지난해 5월 이 배를 제재 목록에 올렸다. 북한의 무기 수출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1718호 등을 통해 일찌감치 금지돼 있다. 그런데도 중국이 이 러시아 화물선에 정박지를 제공한 것이다.

베단트 파텔 국무부 부대변인은 관련 브리핑에서 “이는 우리가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일”이라며 “우리는 러시아의 방위 산업과 관련해 중러의 관계를 주의 깊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는 관련 질의에 해당 문제에 대한 정보가 없다고 반응했다. 미국 주재 중국 대사관은 세부사항은 모른다면서 “국제법이나 안보리의 권한에 근거를 두지 않은 일방적 제재와 확대관할법(long-arm jurisdiction) 적용에 항상 반대한다”고 했다. 두 나라 모두 ‘맞대결’보다 ‘유리한 환경 조성’에 힘을 쏟는 형국이다.

차이나랩 이충형 특임기자(중국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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