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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군단의 고공비행…비결은 꽃동님 ‘소통야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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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이범호 KIA 감독. [사진 KIA 타이거즈]

이범호 KIA 감독. [사진 KIA 타이거즈]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가 개막 이후 질주하고 있다. 1위(22승 11패)를 달리는 KIA를 보며 팬들은 이범호(43) 감독의 현역 시절 별명 ‘꽃범호’에서 딴 ‘꽃동님(꽃+감독님)’이란 찬사를 보낸다. 2일 광주 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3개월차 이범호 감독을 만났다. 이 감독은 "뭐가 좋은지, 힘든지도 못 느낄 정도다. 다만 선수나 코치 시절 했던 성향 그대로 하려하고 있다. 어떻게 좋은 팀으로 만들어야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했다.

KIA는 지난 2월 호주 스프링캠프에서 이범호 타격코치를 감독으로 선임했다. 심재학 단장과의 면접에서 이 감독은 '어떻게 팀을 만들 거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내가 감독이 되면'이라고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우리 선수들이 자유롭게 플레이하면 잘 할 수 있을 거 같다고 답했다. 감독, 코치가 방향을 정해주면 선수들은 그 길로만 가게 된다. 잘 안 될 땐 시간적 여유를 찾아줄 필요도 있고, 자제하게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준비된 감독’이었다. 현역 시절 클럽하우스 리더였던 그는 은퇴사에서 부상 중인 윤석민까지 챙길 정도로 가슴이 따뜻했다. 2019년 은퇴 직후 해외 연수를 다녀왔고, 2020년엔 스카우트, 2021년엔 퓨처스(2군) 총괄코치를 거쳐 2022년부터 1군 타격코치를 지냈다.

KIA 김선빈이 홈런을 치고 들어올 때 덕아웃에서 이범호 감독과 동료 선수들이 축하해주고 있다. [뉴시스]

KIA 김선빈이 홈런을 치고 들어올 때 덕아웃에서 이범호 감독과 동료 선수들이 축하해주고 있다. [뉴시스]

이범호 감독은 그런 과정이 초보 지도자인 자신에게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고등학교 선수들을 보면서 선수를 고르는 눈이 생긴 것 같다. '왜 이런 선수를 뽑았냐'고 할 게 아니라 '이 안에서 키워야 한다'는 마인드를 가졌다. 2군에서는 총괄코치로서 경기를 운영했다. 작전도 짜고, 투수 교체도 했다. 그 시간들이 1군 감독 역할을 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프로야구 초기엔 40대는 물론, 30대 사령탑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프로야구가 성장하고 선수 수명이 길어지면서 젊은 감독은 좀처럼 보기 힘들어졌다. 80년대생으로 선수를 거쳐 감독에 오른 건 이범호 감독이 최초다. 젊은 지도자의 장점에 대해 이 감독은 ‘소통’을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선수들이 형식적인 대답에 그치지 않고 자기 생각을 편히 이야기한다. 그런 거 하라고 젊은 사람을 시킨 것 아닐까”라고 웃었다.

대구에서 학창 생활을 하고, 대전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해 광주에 정착했다. 그리고 이제는 편안함을 느끼고 있다. 이범호 감독은 "광주에서 14년을 보냈다. 아이들은 이 곳에서 태어나 자랐다. 가장 편한 곳이고, 힘이 되어주는 분들도 많다"고 했다. 최근에는 야구인 2세들의 활약이 대단하다. 1남 2녀를 둔 이범호 감독도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이 야구를 시작했다. 그는 "좋은 지도자분들을 만났다. 여러 포지션을 해보고 있다"고 흐뭇해했다.

승리를 거둔 이범호 감독에게 물을 뿌리며 축하하는 선수들. [사진 KIA 타이거즈]

승리를 거둔 이범호 감독에게 물을 뿌리며 축하하는 선수들. [사진 KIA 타이거즈]

이범호 감독은 ‘덕장’으로 분류된다. 선수들과 편하게 대화를 나눈다. 이를 통해 선수들의 상태를 정확히 진단한다. 톱타자로 나서던 박찬호의 타순을 조정한 게 대표적이다. 박찬호는 부진이 이어지자 코칭스태프에게 타순을 9번으로 내려 달라고 스스로 요청했다. 이 감독은 흔쾌히 받아들였고, 1번 타순에서 좀 더 공을 보고 싶었던 김선빈을 올렸다. 타순 교체 이후 3경기에서 KIA는 2승을 따냈다.

이범호 감독은 “선수가 먼저 이야기해주면 감정 소모 없이 더 나은 방향을 찾을 수 있다. 반대로 선수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고 바꾸면 불필요한 오해가 생길 수 있다. 야구는 매일 하는 스포츠다. 불편한 감정이 일주일, 열흘 이어지면 모두에게 안 좋은 결과로 돌아온다”고 설명했다.

이범호 감독과 포옹하는 양현종. [연합뉴스]

이범호 감독과 포옹하는 양현종. [연합뉴스]

이범호 감독은 한화 이글스 시절 ‘믿음의 야구’를 했던 김인식 감독과 함께 했다. 김인식 감독은 당시 이범호, 김태균, 이도형 등 힘 있는 우타자들이 찬스를 맞이하면 ‘혼자 죽으라’는 이야기를 종종 했다. 툭 건드려 병살타를 당할 바에야 공을 멀리 보내 희생플라이를 만들던지, 최악의 경우 삼진을 당하라는  거였다. 결은 조금 다르지만, 이범호 감독 역시 선 굵은 야구를 추구한다.

이범호 감독은 “병살타가 가장 싫다. 어떤 분들은 삼진이 최악이라고 하지만, 삼진은 잘 먹으면 약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루킹 삼진이던, 헛스윙 삼진이던 얻는 게 있고, 뒤 타자는 찬스가 생긴다. 그런 야구를 하기 위해 선수들에게 ‘삼진 먹어도 고개 숙이지 말라’는 주문을 한다”고 했다.

권위에 얽매이지도 않는다. 투수 운용은 1군 경험이 많은 정재훈 투수코치와 상의한다. 이 감독은 “80% 정도는 정 코치 의견에 따른다. 다만 선수들의 성격은 내가 잘 아니까 조언한다. 선택이 필요할 땐 전적으로 내가 결정한다”고 했다.

불펜 운용에 대해선 확실한 기조를 세웠다. 필승조 한 두 명에게 많은 짐을 지우기보다는 최대한 많은 투수들을 활용하려 한다. 이범호 감독은 "보기에 따라 왜 더 좋은 투수를 더 쓰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70~80이닝씩 2년 정도 던지면 부하가 생긴다. 그보다는 4~5명이 50~60이닝을 던지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4~5년 롱런할 수 있고, 안 좋아지더라도 1년 휴식을 가지고 돌아올 수 있다"고 했다.

이범호 감독에게 목표를 묻자 “우승”이 아닌 “KIA가 오랫동안 좋은 팀이 되는 것”이란 답이 돌아왔다. 이 감독은 “팀도, 선수도 반짝 잘하기 보다는 오래 가는 게 좋다”고 했다. 20년 동안 멈춤 없이 2001경기를 소화한 이범호다운 대답이었다.

이범호 감독

생년월일 1981년 11월25일(43세)
체격 1m83㎝ 96㎏
학력 대구수창초-경운중-대구고
경력 2000년 한화 입단
      2010년 일본 소프트뱅크
      2011년 KIA 입단
      2019년 은퇴
      2021년 KIA 2군 총괄코치
      2022년 KIA 1군 타격코치-2024년 KIA 감독
통산 성적 2001경기 타율 0.271(7451타수 1727안타) 329홈런 1127타점
주요 이력 2006·2009 WBC 출전, 통산 최다 만루홈런(17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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