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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검前 사인 '병사' 잘못 적은 교수‧전공의…무죄 취지 파기환송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대법원 전경. 뉴스1

대법원 전경. 뉴스1

사망진단서에 적은 사인이 부검 후 사인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더라도 사망 당시 사실과 부합하고 고의로 거짓을 적은 것으로 볼 수 없다면 죄를 물을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A씨와 교수 B씨에게 허위 진단서 작성에 대해 벌금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울산지방법원으로 사건을 돌려보낸다고 2일 밝혔다.

골수검사 바늘 동맥 찔려 출혈 사망…진단서 ‘병사’ 기재

이들은 2015년 가을, 열이 계속 나서 응급실을 찾은 6개월 영아의 주치의와 담당 전공의였다. 열이 떨어지지 않는 등 급성 백혈병 증상을 보이는 아기에 대해 정확한 진단을 하기 위해 골수검사를 했다.

그러나 너무 작은 아기라 검사도 순탄치 않았다. 너무 어려 검사를 위해 미다졸람‧케타민 등으로 마취도 해야 했다. 오전 9시 10분부터 마취를 하고 A씨가 28분쯤 왼쪽 골반에 몇 차례 골수 채취를 시도하다 실패, 오른쪽으로 옮겨 몇 차례 시도한 뒤 결국 실패했다. 다른 전공의 2명을 불렀는데 전공의 C씨는 35분쯤 오른쪽 골반에 2번 시도했지만 역시 실패했고, 전공의 D씨가 10시쯤 오른쪽 골반에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https://www.aboutkidshealth.ca/Article?contentid=2835&language=Eng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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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골수를 채취하던 중 아기의 산소포화도가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고, 10시 40분엔 결국 시술을 중단하고 응급처치를 하기 시작했다. 10시 58분에 기관삽관, 11시 7분에 심폐소생술을 시작했고 12시 5분에 적혈구 수혈을 시작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아기는 12시 47분에 사망했다. 검사에 들어간 지 4시간도 채 되지 않아서였다.

부검 결과 정확한 사인은 ‘천자침에 의한 총장골동맥 파열에 의한 혈복강’이었다. 골수 채취 바늘이 동맥을 잘못 찔러 구멍이 났고, 흘러나온 나온 피가 뱃속 공간에 차면서 혈압이 떨어져 사망에 이른 것이다. 이에 검찰은 주치의인 B 교수와 전공의 A씨 및 D씨를 업무상과실치사, A씨와 B교수는 허위진단서작성 혐의도 더해 재판에 넘겼다.

대법 “부검 전 적은 사망원인…당시 기준으론 허위 아냐”

1심과 2심 모두 A씨와 B교수의 허위 진단서 작성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고 각각 벌금 300만원, 500만원을 선고했다. 사망의 종류를 ‘병사’로, 선행사인은 ‘범혈구감소증’, 직접사인에 ‘호흡정지’라고 적은 사망진단서가 실제 사망의 원인 등과 다르게 기록된 점이 잘못됐다는 거였다.

대한의사협회의 진단서 작성교부 지침에 따르면 사망의 종류는 ‘병사’ 또는 ‘외인사’로 나뉘고, 알 수 없을 때에는 ‘기타 및 불상’을 적어야 한다. 1심 법원은 “병사가 아니라 외인사임이 명백한데 병사로 적은 건 잘못됐다”며 설령 동맥이 찔려 출혈이 발생한 걸 몰랐다 해도 “정확한 질병 진단이 이뤄지기 전에 사망했다면 지병으로 사망한 거라고 볼 수 없다는 걸 알았을 것”이라며 A씨와 B교수의 고의 허위 기재를 인정했다. 다만 관행적으로 사망진단서 작성의 원칙이 현장에서 잘 지켜지지 않는 점 등을 감안해 벌금형을 내렸다. 항소심 판단도 같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부검 결과 확인된 사망원인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 건 맞지만 사망진단서 작성 당시를 기준으로 보면 내용이 거짓이라거나 고의로 허위를 적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심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당시 아기에게 과량의 진정제가 투여된 뒤라 진정제 부작용으로 생각했을 개연성이 높았으며, 동맥 파열과 그로 인한 출혈을 예측하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사망진단서 작성 당시까지 드러난 경과를 고려해 가장 부합하는 원인과 종류를 자신의 의학적인 판단에 따라 사망진단서에 기재할 수 있다”며 “부검 결과로 밝혀진 사망원인과 다르다고 해서 허위진단서 작성의 고의가 있다고 곧바로 추단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업무상 과실치사 무죄 확정… 바늘 찌른 다른 전공의는 재판 중

A씨와 B교수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는 무죄가 유지됐다. 검찰은 ▶골수검사 전에 수혈 준비를 해두지 않은 것 ▶골수검사를 반복적으로 시도하면서 혈압 모니터링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 ▶전공의를 제대로 감독하지 않은 것 등에 대해 죄가 인정된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골수검사 당시 수혈 준비가 필수적이라고 볼 수는 없고, 소아는 혈압이 아닌 맥박 모니터링이 더 정확해 그로 대체한 것”이라고 보고 시술 및 감독 과정은 죄를 묻기 어렵다고 봤다.

다만 A씨의 호출로 불려가 골수검사를 도왔던 전공의 D씨에 대해 법원은 “골수검사 과정에서의 업무상 과실이 있다면 D의 과실”이라고도 판단했고, 대법원도 이를 그대로 유지했다. D씨의 업무상 과실치사 사건은 A‧B씨와 분리돼 진행됐는데, 아직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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