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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감전될라...구리 선 끌고 걷는다, '어싱 열풍' 이런 풍경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온라인 쇼핑몰에서 시판되고 있는 어싱 용품. 손목에 착용하는 어싱 밴드의 가격은 1만원 이하지만, 어싱 매트, 패드 등 침구류는 수십만원에 달했다. 웹페이지 갈무리

온라인 쇼핑몰에서 시판되고 있는 어싱 용품. 손목에 착용하는 어싱 밴드의 가격은 1만원 이하지만, 어싱 매트, 패드 등 침구류는 수십만원에 달했다. 웹페이지 갈무리

맨발 걷기, 이른바 어싱(earthing) 광풍이 불면서 ‘땅과 몸을 맞대지 않고도 몸속 염증을 빼낸다’고 홍보하는 어싱 용품까지 인기를 끌며 발바닥과 땅을 닿게 해 건강을 증진한다는 ‘어싱 효과’에 논란이 일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에선 접지 효과를 내세워 어싱 스트랩·밴드·테이프는 물론 은나노 항균 정전기 방지 양말까지 판매 중이다. 지난 25일 경기 수원 광교호수공원 황톳길에서 만난 70대 남성도 “맨발 걷기 신발도 있고 양말도 있다는데, 어디서 살 수 있느냐”며 중장년 이용객들에게 정보를 구하고 있었다.

“몸속 정전기를 땅으로 뽑아내겠다며 구리 동선을 연결한 접지 판을 끌고다니는 사람을 봤다”는 목격담도 있다. 맨발 걷기 마니아라는 수원 영통구 주민 이모(53)씨는 “황톳길에 신발을 신고 손목에 황동 전선을 감고 걸어가는 할아버지를 본 적 있다”며 “맨발 걷기의 지압 효과만으로도 훌륭한데, 왜 이상한 모습을 하고 다니시는지 이해가 안 됐다. 감전 우려도 있어 보였다”고 말했다.

어싱 관련 유튜브 영상도 우후죽순 등장하고 있다. 한 건강 유튜브 채널은 구리 동선으로 접지 전선과 접지 신발, 지팡이 제작 등을 ‘실내에서 1000원으로 접지’라는 제목으로 연속 게시해 관심을 모았다. 한 영상엔 ‘추운데 접지를 꼭 발로만 할 것이 아니라 굵은 동선을 길게 늘어뜨려 맨손으로 쥐고 걸으면 된다’는 댓글과 이에 호응하는 반응이 있었다.

전선에 접지판을 땅바닥에 늘어뜨리고 맨발 걷기를 하는 한 시민. 사진 독자

전선에 접지판을 땅바닥에 늘어뜨리고 맨발 걷기를 하는 한 시민. 사진 독자

건물 안에서도 지표면과 연결해 어싱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매트 등 침구류는 유명 침구 브랜드에서도 판매한다. “실내에서도 접지를 유지하면 몸에 있는 정전기를 배출하고 활성 산소를 중화해 염증 수치를 낮추고 모든 질환을 치유할 수 있다”는 어싱 예찬론자들의 주장에서 비롯된 상품이다.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침구류 대신 땅속에 매설돼있는 수도관에 저항이 적은 전선을 연결해 몸에 대고 있어도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학계에선 어싱을 과학적으로 효과가 입증이 되지 않은 추측이나 미신과 같은 사이비 과학으로 보고 있다. “육각수, 게르마늄 팔찌, 옥장판처럼 유사 과학의 일종”이라는 비판이다. 미국 과학 잡지 스켑틱(Skeptic)은 어싱에 관해 2016년 6월 “신발이 최악의 발명품이라는 어싱론자들의 주장은 틀렸다”며 “접지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는 명백히 거짓이거나 의미가 없어 실험할 수 없을 정도로 모호하다”고 썼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연구기관 소속 전문가는 “어싱 용품뿐만 아니라 맨발 걷기도 과학적으로 증명된 효과가 없고, ‘몸과 땅이 맞닿아 전자를 주고받는다’는 기본 전제부터 틀렸다”고 지적했다. 연세대 의공학부 기재홍 교수도 “신약이나 새 치료법이 개발되려면 임상시험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맨발로 운동하면 혈액순환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추측은 들지만, 과학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아 (어싱 효과를) 신뢰하기 어렵다”고 했다.

경기 수원시 영통구 광교호수공원 맨발 황톳길. 손성배 기자

경기 수원시 영통구 광교호수공원 맨발 황톳길. 손성배 기자

맨발 걷기 전도사로 불리는 박동창 맨발걷기국민운동본부 회장은 “신발을 신고 접지를 한다며 다른 물체를 몸에 달고 다니는 것은 맨발 걷기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으로 의미가 없다”면서도 “맨발 걷기로 파킨슨병이 낫고 각종 암이 나았다는 치유 보고가 잇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맨발 걷기 자체의 효과를 놓고도 찬반 논란이 여전한데도 수도권 지자체들은 수억~수십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경쟁적으로 맨발 걷기 길을 조성하고 있다. 성남시는 지난해 ‘100세 건강 황톳길 6선’에 이어 올해도 공원 황톳길을 조성하고 있으며, 용인·하남·안산시도 맨발 걷기 길 조성에 앞장서고 있다.

수원시는 광교호수공원에 개장한 450m 황톳길을 매일 오전 6~7시 정비한다. 한 수도권 지자체 관계자는 “맨발 황톳길 조성 비용은 100m에 1000만원꼴로 주민들의 건강 증진 프로그램으로 민원을 반영해 조성한 뒤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 수원시 영통구 광교호수공원 맨발 황톳길에 황토의 효능 안내판이 있다. 호수공원 황톳길은 450m 길이로 세족장 등이 조성돼있다. 손성배 기자

경기 수원시 영통구 광교호수공원 맨발 황톳길에 황토의 효능 안내판이 있다. 호수공원 황톳길은 450m 길이로 세족장 등이 조성돼있다. 손성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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