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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업 ‘뜨거운 감자’ 지배구조…증권가 vs 재계, 막판 신경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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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지난 26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지수 등이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6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지수 등이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내달 2일 ‘기업 밸류업(가치제고) 프로그램’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는 가운데 지배구조가 본격적으로 논란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기업 내부의 의사결정 시스템과 이사회 구성과 권한 등을 둘러싸고 재계와 증권업계가 첨예하게 부딪히면서, 우수 지배구조의 기준과 의무, 이에 따른 이익·불이익 조항이 정책의 실효성을 가를 거란 전망이 나온다.

‘왜 저평가인가’ 원인부터 차이

재계의 주장은 한 마디로 ‘지배구조 개선이 주가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다. 재계는 지난 23일 대한상공회의소 정책제언을 통해 정부의 밸류업 가이드라인의 핵심이 ‘기업 자율성’이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미 정부가 공시 여부와 내용은 기업 자율이라고 했지만, 해외 투기자본 등이 공시를 요구하거나 특정 지배구조를 강요할 수 있다는 우려다. 또 기업마다 상황이 다른 만큼 무엇이 우수한 지배구조인지 획일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 15일 재계를 대변하는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밸류업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좌담회를 열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재계가 총선 정국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불만을 공식화했다는 해석도 나왔다. 이는 증권업계가 집권 여당의 총선 패배 뒤 밸류업 정책의 동력이 떨어져선 안된다고 우려한 것과 정확히 반대되는 행보다.

한경협 좌담회에 참여한 강원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증시 저평가)의 근본 원인은 (지배구조가 아닌) 기업의 낮은 수익성과 성장성”이라며 “기업 지배구조 등 비재무적 요소가 자기자본이익률(ROE) 등 기업가치를 높인다는 주장은 증명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정철 한국경제연구원장도 “기업 지배구조는 각 기업 상황에 따라 자율적으로 구성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주장했다.

정철 한국경제연구원장이 15일 서울 영등포구 FKI타워에서 열린 '지배구조, 기업 밸류업 인센티브 기준으로 타당한가?' 전문가 좌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한국경제인협회

정철 한국경제연구원장이 15일 서울 영등포구 FKI타워에서 열린 '지배구조, 기업 밸류업 인센티브 기준으로 타당한가?' 전문가 좌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한국경제인협회

이에 대해 자본시장에선 “지배구조 개선 없이 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가 가능하느냐”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배당액을 늘리는 주주환원 자체보다 주주환원이 가능할 만큼 장기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지가 중요한데, 그러려면 기업이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상법 전문가인 송옥렬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26일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의 토론회에서 “투자자(일반주주) 보호 수단이 적으면 지배주주 시스템이 사익을 더 추구하는 비효율적인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관휘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역시 지배주주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기업의 부와 이익을 빼돌리는 ‘터널링’ 현상을 지적하며 “(밸류업 성공을 위해선) 이로 인한 대리인 비용(주주와 경영자의 이해관계가 다를 때 발생하는 문제 해결에 드는 비용)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영권 방어장치 두고도 격돌

기업 오너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경영권과 관련한 지배구조 이슈도 뜨거운 감자다. 특히 최근 몇 년 간 행동주의 펀드들의 경영권 공격이 증가하면서 재계에선 주주환원 목적으로 자사주를 소각하면, 적대적 기업 인수·합병(M&A) 시도 등으로 경영권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배주주가 장기적 전망을 가지고 경영하지 못하면 투자 감소와 생산성 저하로 이어지는 만큼,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과 차등의결권 같은 경영권 보호장치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서울 여의도 증권가 모습. 연합뉴스

서울 여의도 증권가 모습. 연합뉴스

하지만 김규식 피보나치자산운용 변호사는 이에 대해 “투자자(일반주주)를 위해 투자자를 더 무시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는 얘기”라고 반박했다. 송옥렬 교수는 “국내 행동주의 펀드는 규모가 영세해 경영권 분쟁을 야기할 정도로 (회사 지분을) 많이 취득하지 않는다”면서 “밸류업으로 주주환원 수준이 높아지고 주가가 올라가면 오히려 자연스럽게 경영권은 안정된다”고 주장했다.

지배구조 이슈를 놓고 밸류업 제도의 양대 축인 재계(상장사)와 자본시장의 시각 차이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공은 금융당국으로 넘어가는 모양새다.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는 오는 5월 2일 발표하는 밸류업 가이드라인에 상장사가 직접 자사의 지배구조와 자본비용 등을 분석해 적정 기업가치를 책정하는 내용을 담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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