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장세정의 시선

생각을 바꾸면 '나라 운명'이 바뀔 수도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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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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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 총선 최종 성적표를 받은 정치권의 반응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한쪽에서는 "성난 민심이 '검찰 정권'을 심판했다"며 환호하고, 다른 쪽에선 "범죄자들의 국회 입성을 막지 못했다"며 탄식한다. 민심이 홍해처럼 좌우로 쫙 갈라졌으니 앞으로 남은 3년 내내 정쟁이 일상이 되고 국민 통합이 요원해져 분열과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질 듯해 걱정스럽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이재명 민주당 대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이재명 민주당 대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일각에서는 준(準)연동형 비례대표제도를 방치해 조국혁신당이라는 '기생 정당'의 출현을 못 막았다고 지적하고, 승자독식(勝者獨食)의 현행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꾸지 못해 사표(死票)가 양산됐다고 비판한다. 예컨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전국 254개 지역구의 총투표수는 2923만4129표였는데 민주당이 1475만8083표(50.5%), 국민의힘은 1317만9769표(45.1%)를 득표했다. 양당의 득표율 격차는 5.4%포인트에 불과하지만, 지역구 의석은 민주당 161석, 국민의힘 90석으로 차이는 1.78배나 됐다. 선거 제도를 원망하는 목소리는 일리가 있지만, 버스 지나간 뒤의 뒷북일 뿐이다.

총선 참패로 윤 대통령 최대 위기
민심 얻을 과감한 쇄신 인사 필요
민정수석 되살려 정밀 검증해야

 192석의 범야권은 이빨 빠진 사자를 공격하는 하이에나처럼 윤석열 대통령을 공격할 것이다. '김건희 특검법'과 '채상병 특검법' 등으로 정치적 압박을 가할 태세다.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겠지만, 집권 3년 차에 사실상 레임덕 처지인 대통령으로선 방어가 여의치 않을 듯하다. 22대 국회에 진출할 여당 정치인들이 공천권도 없고 힘도 빠진 대통령을 자기 일처럼 감싸주려 할지 의문이다.
 벌써 대통령과 여당 정치인들의 탈동조화(decoupling) 움직임이 감지된다. 안철수(분당갑) 당선자는 "채상병 특검에 찬성한다"면서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하면 찬성표를 던지겠다고 선언했다. 김재섭(도봉갑) 당선자는 "김 여사에 대한 여러 문제가 국정 운영에 발목을 잡았다"며 "독소 조항 몇 개를 바꾼다면 특검법을 요구하는 국민 요청을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2022년 3월 김건희 여사가 서울 서초1동 주민센터에서 20대 대선 사전투표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2022년 3월 김건희 여사가 서울 서초1동 주민센터에서 20대 대선 사전투표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번 총선을 포함해 지난 2년의 국정을 냉정하게 되돌아보면 많은 문제의 원점은 윤 대통령으로 수렴된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당사자는 좀 억울하겠지만, 권한이 과도하게 집중된 대통령중심제에서는 숙명 같은 것이다. 윤 대통령 스스로 용산 집무실에 올려놓은 팻말(The Buck Stops Here!)을 거론하며 "모든 책임은 나에게 귀속된다"고 의미를 설명하지 않았던가.
 윤 대통령은 야권보다 보수 진영의 비판에 더 섭섭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탄핵당한 보수 세력에 혜성처럼 합류해 문재인 정권의 실정에 용기 있게 태클을 걸고 극적으로 정권을 탈환했는데, 인제 와서 보수세력조차 냉담해진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 2022년 대선 승리로 윤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보수의 채권자'가 됐다면, 크게 지지 않아도 될 총선에서 참패하는 바람에 이젠 '보수의 채무자'가 된 셈이다.

2022년 3월 10일 제20대 대통령 선거 개표 결과 승리가 확인되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서울 여의도 당사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어퍼컷 세리모니를 하며 인사하고 있다. [중앙포토]

2022년 3월 10일 제20대 대통령 선거 개표 결과 승리가 확인되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서울 여의도 당사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어퍼컷 세리모니를 하며 인사하고 있다. [중앙포토]

 과거는 과거다. 더 중요한 것은 남은 3년의 미래다. 아마추어 골퍼가 얼떨결에 버디를 잡은 직후 흥분을 주체하지 못해 오비를 냈다면, 이제 마지막 남은 홀에서 마음을 다잡아 파세이브라도 하면 성공적일 수 있다. 아직 시간도 기회도 있다.
 마무리를 잘하려면 결국 인사를 잘해야 한다. 한덕수 총리가 사의를 밝혔고, 이관섭 비서실장 등 대통령실 참모들도 대폭 교체될 전망이다. 국무위원 중에도 중폭 이상의 개각설이 나온다. 민감한 인사는 양날의 칼이다. 인사를 잘하면 민심을 크게 얻을 수 있고, 잘못하면 대량 실점한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어 보이는 윤 대통령으로선 총선 참패로 어수선한 국정 분위기를 바꿀 마지막 기회가 과감한 쇄신 인사 카드다.
 검증을 제대로 못 했거나 오기로 밀어붙이는 인사는 정치적 재앙이나 다름없다.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 박순애 교육부 장관,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등 대표적 인사 실패 사례를 되풀이하면 민심을 완전히 잃어 다음 대선까지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혈연·학연·지연·근무연 등으로 잘 아는 주변 인물을 중용하는 인사는 단념하고, 누가 보더라도 유능한 인재를 널리 찾아서 쓰는 것이 답이다. 현행 인사 검증 시스템이 계속 문제를 일으킨다면 꼼꼼한 검증이 가능한 민정수석실을 부활하는 결단을 마다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2022년 12월 13일 당시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총리가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 마련된 국무회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한 총리는 총선 참패 직후 사의를 밝힌 상태다. [대통령실]

2022년 12월 13일 당시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총리가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 마련된 국무회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한 총리는 총선 참패 직후 사의를 밝힌 상태다. [대통령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성격이 바뀌고, 성격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고 했다. 심기일전해 생각을 바꾸면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는 물론이고 대한민국의 운명도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