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선거로 쌓인 경제·정책 불확실성 해소 나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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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나랏빚 GDP 50%대, 무리한 공약 솎아내야

전기요금 인상, 부실 부동산 PF 정리도 숙제

부처 중심 국정 운용이 국정쇄신의 첫 걸음

국민이 정부·여당에 매서운 회초리를 들었던 총선이 끝났다. 선거 민심을 확인한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하나같이 ‘민생’을 얘기했다. 민생이 나아지려면 경제가 좋아야 한다. 이제 선거판의 열기와 흥분을 가라앉히고 경제에 막힌 곳은 없는지, 표를 얻기 위해 경제에 과도한 스트레스를 주지는 않았는지 점검할 때다.

선거 승리를 위해 여야의 ‘묻지 마 공약’이 넘쳐났다. 건전 재정을 표방한 여당도 생필품 부가가치세 한시 인하에서 무상보육 확대까지 포퓰리즘 경쟁에 뛰어들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우파의 이재명’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선거개입이라는 야당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대통령은 24차례나 민생토론회를 열고 유권자 귀에 착 감기는 토건 정책을 쏟아냈다.

그제 정부가 법정기한보다 하루 늦게 내놓은 지난해 국가 결산 자료를 보면 나랏빚이 처음으로 국내총생산(GDP)의 50%를 넘어섰다. 온전히 현 정부의 책임인 지난해에도 국가채무는 60조원 가까이 늘어난 1127조원으로 사상 최대였다. 재정이 감당하기 힘든 공약은 솎아내야 한다.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최근 기획재정부 간부들에게 “기재부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재정은 한정된 만큼, 정책과제·공약의 경제성과 실현가능성을 따져 옥석을 가려야 한다는 의미다. 내년 예산안의 기본 방향을 정하는 국가재정전략회의가 다음 달 열리고 7월 세법개정안과 8월 예산안이 나온다. 기재부는 총선 청구서에 휘둘리지 말고 나라의 곳간지기라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대통령이 민생토론회에서 밝힌 정책도 우선순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물론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의 발언이 선거판 공약과는 무게가 다를 것이다. 부처 입장에서 대통령의 지시를 이행할 의무가 있다지만 이를 합리적으로 다듬고 정책의 실현 가능성을 높이며 부작용을 줄이는 것 역시 경제 관료가 마땅히 할 일이다.

총선 때문에 미뤄둔 숙제도 쌓여있다. 물가가 부담이지만 전기요금의 단계적 현실화를 더 늦춰선 안 된다. 지난해 한전의 누적적자는 43조원, 총부채는 202조원에 달했다. 하루 90억원의 이자를 감당하는 빚 경영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대출 정리도 속도를 내야 한다. 부실 사업장을 정리해야 그나마 사업성이 괜찮은 공사가 굴러간다.

경제가 가장 싫어하는 게 불확실성이다. 대통령의 민생토론회를 비롯해 정부가 기존에 발표한 정책 가운데 입법 조치가 필요한 게 한둘이 아니다. 당장 정부가 폐지하겠다는 금융투자소득세의 운명은 어찌 되고, 증시 밸류업 프로그램의 세제 지원은 예정대로 진행될 수 있을까.

거대 야당이 주도할 22대 국회에서 경제정책의 불확실성은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 그래도 정부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지혜롭게 구분해 정책 자원의 낭비를 줄였으면 한다. 힘들어도 해야 할 일은 합리적 여론의 지지를 바탕으로 국회를 설득하는 끈기를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정책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할 수 있다.

정권의 시계(視界)를 넘어 나라 경제를 책임지겠다는 경제 관료의 책임감과 전문성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청와대 정부’였던 전 정부를 비판하며 윤 대통령은 부처 중심, 장관 중심의 국정 운용을 약속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용와대 정부’ 소리까지 들었다. 장관이 잘 안 보인다는 얘기도 나왔다. 제 목소리를 내는 장관이 나오도록 용산과 부처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게 총선 이후 국정 쇄신의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