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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 용산 독주, 무감동 공천까지…정권심판론 극복 못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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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민의힘 지도부와의 오찬에 앞서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민의힘 지도부와의 오찬에 앞서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뉴스1

4·10 총선 국민의힘 완패 이유는 멀리 있지 않다. 매주 발표되는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7월 1주 차 이후 21개월 연속 국정수행 지지율 40%를 밑돌았다. 2022년 5월 10일 임기 시작 이후 2개월이 되지 않아 긍정 여론이 부정 여론에 역전된 이후 단 한 번도 이를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총선 국면에 접어든 이후 실시된 대다수 여론조사에서 ‘정권 심판’ 응답이 ‘정권 지원’ 답변을 압도한 것도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의 패배를 예고하는 명징한 신호였다.

윤석열 정부가 이렇듯 인기를 잃기까지는 기본적으로 민생 문제 해결에 무능함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윤 대통령 부정평가 이유 중 부동의 1위는 ‘경제·민생·물가’였다. 국민 누구나 즐겨 먹던 사과값이 폭등해 ‘금사과’로 불렸다. 사전투표를 사흘 앞둔 지난 2일 통계청이 발표한 ‘3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사과는 88.2% 상승해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80년 1월 이후 역대 최대 상승 폭이었다. 배 가격도 뛰어 역시 조사가 시작된 75년 1월 이후 역대 최대 상승률을 보였다. 이 와중에 윤 대통령이 장바구니 물가를 잡기 위해 현장 시찰에 나섰지만, ‘대파 875원 발언’만 부각돼 악화된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의정 갈등 길어지며 국민 피로감

한국갤럽 조사에서 윤 대통령 부정평가 이유 중 2위는 ‘독단적·일방적’이란 평가였다. 이런 세간의 평가에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논란도 가세했다. 의대 증원에 대해 대다수 국민은 동조했지만, 정부와 의료계의 대결이 길어지며 피로감이 쌓이면서 민심은 급변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을 비롯해 국민의힘에서도 “2000명 증원을 고집하면 안 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지난 1일 윤 대통령은 대국민담화에서 “이해집단의 저항에 굴복한다면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다”며 강경 기조를 견지했다. 조진만(정치학) 덕성여대 교수는 “결국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대통령 지지율이 중간 평가 성격의 총선에선 결정적 요소”라며 “물가와 금리 모두 좋지 않아 심판론을 피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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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이번 총선은 정부·여당을 강하게 견제하려는 심판 구도 속에 치러졌다. 여기에 3월 초 조국혁신당의 출현은 야권에 유리한 바람을 몰고 왔다. 당초 2월까지만 해도 더불어민주당 공천 과정에서 벌어진 ‘친명횡재, 비명횡사’라고 축약되는 공천 파동으로 인해 민주당 지지층은 분열 양상을 보였다. 하지만 조국혁신당의 등장은 흩어진 민주당 지지층을 뭉치게 하는 촉매제였다. 지난 2월 자녀 입시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2심 재판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조국 대표는 자신의 무죄를 항변하는 대신 “실형이 확정되면 감옥에 가겠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한 위원장을 겨냥해 자신과 똑같은 수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런 전략은 야권 지지층의 마음을 파고들었고 지역구는 민주당에, 비례대표는 조국혁신당에 교차투표하라는 ‘지민비조’ 구호가 중도층까지 번져 나갔다.

“여당, 구도·이슈·공천에서 완패”

구도와 바람 모두에서 밀리는 여권은 인물 경쟁력에서도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당이 공천 파동에 휩싸이는 동안 국민의힘은 비교적 조용한 공천 과정을 거쳤다. ‘시스템 공천’이란 명목으로 현역 의원을 컷오프시키지 않은 채 단수공천을 주거나 경선에 붙였다. 그 결과 대부분 현역이 그대로 생존하면서 ‘무감동 공천’이란 지적이 이어졌다. 여기에 이른바 ‘용핵관’으로 불리는 윤 대통령의 핵심 측근도 공천권을 거머쥐었다. 한 위원장은 “감동이 없다는, 소위 ‘억까(억지 비판)’를 하는 분도 있는데, 이런 조용한 공천은 역대 유래가 잘 없다”고 자신했지만 막상 여야가 후보 진용을 갖춘 뒤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앞서지 못했다. 여권 인사는 “국민의힘 공천은 전형적으로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 진 공천”이라며 “한 위원장은 기존 정치문법과 다르다는 신선함이 차별점이었는데, 막상 공천 후에는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소리가 나올 만큼 새로운 카드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실제 역대 총선에서 ‘새 얼굴 수혈’은 선거판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였다. 96년 15대 총선 당시 홍준표·김문수 등 ‘YS 키즈’와 정동영·추미애 등 ‘DJ 키즈’가 영입돼 각축을 벌인 게 대표적이다. 이명박 정부 말기인 2012년 치러진 총선에서도 당초 여당이 고전할 것이란 예상을 깨고 새누리당이 과반인 152석을 얻어 승리한 이유로 박근혜 비대위와 인재 영입이 꼽힌다. 당시 새누리당은 26세 하버드대 졸업생인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를 비대위원에 앉혀 이목을 끌었고, ‘경제민주화’ 주창자인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등장으로 경제 이슈도 흡수하는 효과를 봤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윤 대통령에 대한 긍-부정 평가 차이가 20%포인트를 넘어서면서 선거 구도가 이슈(바람)와 인물을 모두 압도했다”며 “한동훈 위원장도 선거 기간 내내 새로운 걸 보여주지 못하면서 국민의힘은 구도·이슈·인물에서 완패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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