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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정계 입문 111일 만에 ‘최악 성적표’…미래 불확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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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0일 오후 6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이때까지의 다변가(多辯家) 면모는 없었다. 그는 이날 오후 개표상황실이 마련된 국회도서관 지하 대강당에서 10분간 말없이 굳은 표정으로 TV화면만 응시했다. 방송 3사가 동시에 여당의 개헌저지선 붕괴를 예고하는 출구조사를 송출했다. 느리게 깜빡이던 한 위원장의 눈꺼풀이 잠시 빨라지는가 싶더니, 깍지 낀 두 손이 턱밑에서 초조한 듯 달싹였다. 창백한 낯빛으로 어금니를 꽉 깨문 그의 곁에 한 참모가 다가와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는 그제야 “우리 국민의힘이 민심의 뜻을 따르기 위한 정치를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출구조사 결과가 실망스럽다. 그렇지만 끝까지 국민 선택을 지켜보겠다”고 짧게 말한 뒤 자리를 떴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앞줄 가운데) 등 참석자들이 10일 오후 국회도서관 개표상황실에서 출구조사 발표를 시청하고 있다. [뉴시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앞줄 가운데) 등 참석자들이 10일 오후 국회도서관 개표상황실에서 출구조사 발표를 시청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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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마지막까지 기적은 없었다. 국민의힘은 3연속(20·21·22대) 총선 패배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이로써 총선을 사실상 원톱으로 지휘한 한 위원장의 성적표도 정계 입문 111일 만에 실패로 결론났다.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통화에서 “선거 전략, 메시지, 정책이 전무했다. 전통적 지지층의 안간힘으로만 버틴 선거”라며 “처음에는 ‘한동훈 효과’를 기대했지만, 결국 한동훈 아닌 누가 했어도 이 정도는 했을 것”이라고 탄식했다.

선거운동 초반부터 물밑에서는 불안 징후가 없지 않았다. ‘후보는 없고, 비대위원장만 있는 선거’라는 후보들의 볼멘소리가 이날 비극의 암시였다. 수도권 지역 후보는 익명을 전제로 “막판에 한 위원장이 지역구에 한 번 더 온다고 하길래 완곡히 거절했다. 유세차 위에서 마이크를 또 잡아봤자…”라고 말했다. 한 위원장이 릴레이 셀카 등으로 스타 효과를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주목도를 독식해 정작 지역구 후보 득표에는 실질적 도움이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진만 덕성여대 교수는 “그간 보수 진영 내에서 ‘한동훈이 개인 선거운동을 한다’는 시각이 많았다”며 “섣불리 조기 등판했다는 우려를 불식하지 못하고 결국 정치적으로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됐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이날 자정까지 상황실에 돌아오지 않았다. 모처에서 조용히 개표 과정을 지켜봤다고 한다. 비대위 지도부 인사들은 이날 한 위원장의 거취에 대해 “최종 개표 결과지를 받아 보고 얘기하자” “섣불리 말하기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그 역시 과거 패장(敗將)들처럼 당분간 공개 행보를 자제할 공산이 크다. 일각에선 한 위원장의 유학 등 출국 가능성이 다시 거론된다. 본인이 수차례 유학설을 일축하며 ‘총선이 끝나도 정치 무대에 서겠다’고 공언했지만, 당장은 당내 발 붙이고 설 곳이 마땅치 않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한 위원장은 당연히 퇴장하는 수순”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질타와 함께 한동훈 연대 책임론이 분출하면서 국민의힘은 당분간 아노미(anomie·무질서)에 빠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민의힘은 임시 비대위 체제를 피하기 어렵게 됐다. TK 지역 의원은 “윤재옥 원내대표가 임시 비대위원장을 맡아 상황을 수습하고 전당대회로 가는 게 합리적 수순”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친윤계 퇴각, 개혁신당과 합당 등을 점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날 여권에서는 지난 4일 한 위원장에게 “총선에서 제1 당이 못 되면 그건 황교안 시즌2로 전락할 것”이라고 경고한 홍준표 대구시장의 페이스북 글이 회자했다. 이만희 선대위 종합상황실장은 오후 11시 40분쯤 기자들에게 “오늘은 추가 입장 발표가 없다. 내일(11일) 오전 낮에 장소를 따로 공지하고 (한 위원장이)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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