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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정애의 시시각각

이렇게 투표하는 게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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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고정애 중앙SUNDAY 편집국장대리

고정애 중앙SUNDAY 편집국장대리

우리가 사는 세계는 단순다수제(first-past-the-post)가 지배한다. 대선이든, 총선 지역구든, 지방선거든 한 표라도 많으면 승자가 된다. 실제 지방선거에선 한 표 차로 이긴 사례가 있다. 총선에선 세 표 차였다(2000년 경기도 광주).

 분명 그렇지 않은 세계도 있다. 후보자가 세 명 이상일 경우 과반 아닌 후보가 당선되곤 하는데, 대표성이 충분하냐는 문제의식이 생길 수밖에 없다. 19대 대선이 예일 수 있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17%포인트 차로 당선됐다(득표율 41.1%). 기권자를 포함한 전체 유권자로 보면 10명 중 7명(68.4%)은 문 대통령에게 표를 주지 않았다.

 단순다수제의 경험이 가장 오랜 영국에선 그래서 19세기부터 대안이 모색됐다(영국답게 여전히 단순다수제다). 토머스 헤어가 제안했고, 친구인 존 스튜어트 밀이 열렬히 옹호한 방식이 그중 하나인데, 단기이양(單記移讓)투표제(single transferable vote)다. 밀의 설명은 이랬다. “유권자가 투표용지에 일차적으로 선호하는 후보 외에 차선의 후보 이름도 적어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신이 일차적으로 지지한 후보가 당선 가능한 수의 득표를 하지 못한다면 그다음 순위의 후보가 득을 볼 수 있다.”(『대의정부론』)

한 표 더 많으면 되는 단순다수제
열성층 동원하는 혐오정치에 취약
중도층 위해 결선투표 등 검토해야

 대영제국에서 퍼져나가던 아이디어는 호주에서 실현됐다. 한 번의 투표로 과반 당선자를 만들어낼 비법을 찾아냈다. 1918년부터 적용된 선호투표제(preferential voting)다. 5명이 후보라면 투표할 때 1위부터 5위까지 선호도를 표기한다. 개표할 땐 1위 표부터 센다. 절반에서 한 표라도 많은 이가 나오면 그가 당선된다. 없다면 꼴찌(5위) 표에 표시된 2순위 후보에게 꼴찌 표가 배분된다. 과반 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이 과정을 되풀이한다. 첫 선호에서 최다 득표자가 당선자가 될 수도 있지만, 않을 수도 있다. 2, 3위 표도 중요해진다. 호주는 투표가 의무이기도 하다. 집단적 거부감을 받는 처신을 해선 곤란하다.

 단순다수제와 선호투표제가 어떤 차이를 만들어내는지 궁금할 수 있겠다. 누군가 2022년 호주 하원 선거를 분석했던데, 151석 중 16석에서 1위 최다 득표를 하고도 당선되지 못했다고 한다. 특히 집권당인 ‘연합(자유당-국민당 연합)’에서 노동당이나 소수당·무소속(기타)으로 바뀜이 많았다. 단순다수제였다면 '연합'이 과반에서 3석 모자란 73석으로 노동당(71석)을 제치고 1당이 됐을 것이다. 실제론 노동당이 과반(77석)을 했고, '연합'은 53석으로 쪼그라들었다. 기타가 7석에서 16석으로 크게 늘었다.

제22대 국회의원선거 투표일을 하루 앞둔 9일 대구 중구선거관리위원회에서 선관위 관계자가 기표용구를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제22대 국회의원선거 투표일을 하루 앞둔 9일 대구 중구선거관리위원회에서 선관위 관계자가 기표용구를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널리 알려졌다시피 프랑스의 세계는 또 다르다.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가 제안한 방법을 변형해,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1·2위 후보끼리 결선투표를 치른다. 프랑스가 극우정당(국민연합)의 위협을 그나마 저지해 올 수 있었던 비결이다. 2022년 대선에서도 국민연합의 마린 르펜이 1차 투표에서 23.7%를 얻었으나 결선투표에선 17.8%포인트 늘리는 데 그쳤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28.5%에서 58.6%가 됐다.

 이미 22대 국회는 21대 국회 이상으로 최악일 거라고 예상한다. 경쟁자를 혐오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더 자극하고 조롱하고 경멸하고 욕설하는 데 능숙한 인물들이 후보가 됐고, 열성적 지지층만 동원해도 당선이 가능한 거로 나온다. 오래전부터 조짐은 있었으나 이젠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된 듯하다. 최악을 상상해도 그 이상의 최악이 등장하고 있다. 반면에 혐오를 혐오하는 중간지대는 발언권을 잃어 간다.

 어떤 투표제도 완벽하진 않다. 그렇더라도 혐오 정치의 시대에 단순다수제는 너무나도 한계가 뚜렷하다. 열성 지지층에 과도한 발언권을 준다. 일종의 프리패스가 되고 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니, 병립형 비례대표제니 하는 것 이상으로, 투표 방식을 고민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