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도 숨긴다? 사람잡는 '고사리 명당'…봄 제주 조마조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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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 꺾다 길 잃었다”

제주도민이 한라산에서 채취한 고사리. 최충일 기자

제주도민이 한라산에서 채취한 고사리. 최충일 기자

지난 2일 오후 3시 23분쯤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 일대 숲에서 60대 여성 A씨가 “고사리를 꺾다 길을 잃었다”고 119에 신고했다. 구조대원은 119구조견(초롱이)과 함께 출동해 현장에 도착한 지 약 30분 만에 A씨를 발견해 구조했다. 지난달 31일과 29일에도 각각 서귀포시 안덕면 상창리, 제주시 구좌읍 덕천리에서 고사리 채취객이 구조됐다.

또 제주서부경찰서는 지난 1일 오후 8시쯤 배우자에게 “고사리를 채취하겠다”고 한 후 집을 나선 60대 남성 B씨가 실종됐다고 밝혔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폐쇄회로(CC)TV와 드론 등을 이용해 B씨 자동차(흰색 포터 트럭)가 제주시 구좌읍의 거슨새미오름까지 이동한 사실을 파악하고 수색했지만, 5일까지 발견하지 못했다.

제주 길 잃음 41.4%...고사리 때문에  

지난 2일 오후 3시 23분쯤 제주시 구좌읍 일대 숲에서 60대 여성 A씨가 자신을 찾은 119구조견(초롱이)와 인사하고 있다. 사진 제주도소방안전본부

지난 2일 오후 3시 23분쯤 제주시 구좌읍 일대 숲에서 60대 여성 A씨가 자신을 찾은 119구조견(초롱이)와 인사하고 있다. 사진 제주도소방안전본부

제주도소방안전본부는 고사리 채취객 등 야외 활동 인구가 늘자 길 잃음 안전사고주의보를 발령했다고 5일 밝혔다. 소방본부 집계 결과 최근 5년(2019~2023년) 간 제주도내 길 잃음 안전사고는 총 459건으로 한해 91.8건 꼴로 발생했다. 이와 관련해 1명이 사망하고 19명이 다쳤다. 길 잃음 사고 중 41.4%(190건)가 고사리 채취와 관련이 있다고 소방당국은 전했다. 32.7%(150건)는 등산·오름 탐방 중 길 잃음 사고, 25.9%(119건)는 올레길·둘레길 탐방 중 길 잃음이었다. 길 잃음 사고 시기는 봄철인 3~5월에 58.6%가 발생했다.

명당 찾아 무작정 걷다 낭패 

제주경찰청 제주경찰안심드론순찰대원들이 4일 제주시 구좌읍에서 실종된 60대 남성의 흰색 포터 차량 실시간 영상을 드론을 통해 보고 있다. 사진 제주경찰청

제주경찰청 제주경찰안심드론순찰대원들이 4일 제주시 구좌읍에서 실종된 60대 남성의 흰색 포터 차량 실시간 영상을 드론을 통해 보고 있다. 사진 제주경찰청

해마다 4월이되면 제주도내 목장과 오름(작은화산체) 등지에는 오전 이른 시간부터 고사리 채취객이 몰려든다. 고사리는 최근 봄비를 맞으며 자란 게 가장 연하고 상품성이 좋다고 한다. 제주도민은 4~5월 비를 ‘고사리 장마’라 부른다. 이때 따는 고사리는 잎이 아직 펴지기 전이어서 줄기 부분이 여리고 부드럽다. 5월 하순이 되면 이 줄기가 단단해지면서 식감과 맛이 떨어진다.

고사리가 많은 ‘명당’을 찾는 것도 사고를 부르는 요인이라고 한다. 제주에서는 ‘고사리 명당은 딸이나 며느리에게도 알려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혼자만 알고 싶은 명당을 찾다 길을 잃어 낭패를 본다. 특히 고사리는 제주 중산간(200~600m) 지대에 주로 분포하는데 땅 밑 고사리만 보고 걷다 숲속에서 길을 잃어버리곤 한다.

구조견 배치하고, 길 잃음 대처키트 설치

지난달 29일 제주시 구좌읍 덕천리에서 길잃음 신고 후 구조된 고사리 채취객. 사진 제주도소방안전본부

지난달 29일 제주시 구좌읍 덕천리에서 길잃음 신고 후 구조된 고사리 채취객. 사진 제주도소방안전본부

소방본부는 고사리철 길 잃음 사고가 자주 발생한 지역을 중심으로 119구조견을 전진 배치했다. 또 오는 4월 중순까지 고사리 채취객이 몰리는 지역을 중심으로 길 잃음 대처키트 보관함을 설치한다. 대처키트 보관함에는 길을 잃었을 때 대처 방법을 적은 리플릿과 호루라기, 담요, 포도당 캔디, 야광스틱 등이 담겼다. 고민자 제주도소방안전본부장은 “고사리 채취 시 반드시 길을 잘 아는 일행과 동행해야 하고, 자신의 위치를 알릴 수 있는 휴대전화와 호각 등을 꼭 휴대해야 한다”며 “길을 잃었을 때는 119에 신고 후 구조가 될 때까지 되도록 신고지점에서 기다려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안전하게 즐기려면 고사리 축제도

제주 한라산 고사리. 최충일 기자

제주 한라산 고사리. 최충일 기자

한편 제주에서는 고사리 축제도 열린다. 오는 13일부터 14일까지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 서쪽 들판에서 열리는 ‘제28회 한라산 청정 고사리축제’다. 고사리에 익숙한 마을 주민에게 고사리 꺾기 노하우를 배울 수도 있고, 직접 딴 고사리는 집으로 가져가 요리해 먹을 수 있다. 행사장에서는 고사리 건조 시연과 음식 만들기 체험도 할 수 있다.

고사리는 ‘산에서 나는 소고기’라고 불릴 정도로 영양이 풍부하다. 단백질·칼슘·철분·무기질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과거 ‘궐채(蕨菜)’라는 이름으로 임금께 진상했다. 수확 후 말렸다가 1년 내내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제주산 건조 고사리는 소매가로 100g당 1만원 이상에 거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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