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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만난 박단에 "내부 적"…전공의들, 탄핵성명서까지 돌린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대위원장이 지난달 31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 참석한 모습. 연합뉴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대위원장이 지난달 31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 참석한 모습.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의 비공개 만남이 뚜렷한 성과 없이 끝난 가운데 5일 정부는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정부의 2000명 증원 방침은 확고해 ‘전면 백지화’를 요구하는 전공의들 입장과 간극이 큰 상황이다.

이날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전날(4일) 윤 대통령과 박 위워장 간 만남에 대해 “어제가 첫 만남이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고 했다. 이어 “정부는 진정성을 가지고 대화 노력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며 “상호 간 공개하지 않도록 협의돼 있어 상세히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의사 단체와)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정부와 전공의가 이제 막 대화의 물꼬를 텄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는 2000명 증원 방침을 재확인했다. 박 차관은 “아직은 (의료계의) 대안이 제시되지 않은 상태이고, 2000명 증원은 정부가 정책 결정을 내린 사항이기 때문에 특별한 변경 사유가 있기 전까지는 기존 방침은 유효하다”고 했다. 정부는 앞서 지난 1일 윤석열 대통령의 담화를 통해 의료계가 ‘통일된 안’을 제시하는 것을 전제로 증원 규모 조정 가능성을 열어뒀다.

의료계가 통일된 안을 도출해낼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크지 않다. 의료계 단체마다, 구성원마다 의대 증원을 둘러싼 입장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특히 집단사직한 당사자인 대전협 측은 ‘증원 전면 백지화’를 포함해 7대 요구사항을 고수하고 있다. 박단 위원장은 윤 대통령과 면담 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는 없습니다”라는 부정적인 평을 남긴 뒤 다시 외부와 접촉을 끊은 상태다.

尹-전공의 독대 후 의료계 분열…‘증원안’ 마련도 난망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 당선자가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를 방문, 김종생 NCCK 총무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 당선자가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를 방문, 김종생 NCCK 총무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료계 일각에선 윤 대통령과 ‘조건 없는 만남’에 응한 박단 위원장을 향한 비판이 이어지는 등 오히려 사분오열하는 양상이다. 한 사직 전공의 A씨는 “어차피 대통령을 만나도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을 텐데, 정치쇼에 이용되거나 우리 뜻이 왜곡돼 전달될까 봐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며 “그냥 가만히 있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현택 차기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이날 오전 SNS에 “A few enemies inside make me more difficult than a huge enemy outside(일부 내부의 적은 외부에 있는 거대한 적보다 나를 더 힘들게 한다)”며 박 위원장을 저격하는 듯한 문구를 올리기도 했다.

전공의 내 강경파들은 박 위원장이 윤 대통령을 만난 것이 독단적 결정이었다고 비판하며 ‘탄핵 성명서’까지 돌리고 있다. 자신을 한 수련병원 대표라고 밝힌 익명의 전공의는 성명서에서 “(윤 대통령과 독대는) 대전협 비대위 내에서만 상의 됐을 뿐, 나머지 병원 대표들과는 사전에 합의되지 않았다”며 “박 위원장은 언제든 전국 사직 전공의들 삶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항을 독단적으로 강행할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전공의 A씨는 “어쨌든 박 위원장이 대통령과 사진 한 장 찍히지 않았고 어떤 합의를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탄핵까지 주장하는 건 대다수의 의견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의대 교수들 단체인 전국의대교수협의회(전의교협)와 전국의대교수비대위(전의비) 모두 증원에 원천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전공의 복귀가 사태 해결의 핵심인 상황에서 선배 격인 교수들이 선뜻 의견을 모으고 나서기 주저하는 모습이다.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은 “전공의들이 안을 만든다면 모를까, 우리가 주도적으로 나서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며 “통일된 안을 가져오라는 대통령 말도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전의비 소속 한 의대 교수협의회 비대위원장도 “지금 모든 키는 대전협이 갖고 있다”며 “우리가 어떤 안을 내는 것이 적절한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아직 정한 바가 없다”고 말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이날 입장문에서 정부와 의료계에 “정부는 무능하고 안일하며 전공의는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노조는 대통령실을 겨냥, “대화의 모양새만 취했다면 환자 생명을 볼모로 한 득표용 이벤트였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박단 위원장이 만남 직후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는 없다”고 낸 입장에 대해서도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는 전공의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라며 진료 정상화를 위해 양측이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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